항목 ID | GC029C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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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집필자 | 이창언 |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도진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고령박씨들은 고려 후기 고령에 정착한 박경(朴景)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후대에 다시 세 개의 지파(支派)를 형성했는데, 입향조의 고손 박계조(朴繼祖)의 큰아들과 셋째 아들인 박윤(朴潤)과 박택(朴澤), 그리고 둘째 아들 박일(朴溢)의 양자 박정번(朴廷璠)을 파조로 하여 각기 죽연파(竹淵派), 낙락당파(樂樂堂派), 학암파(鶴巖派)로 구성되어 있다. 도진리 사람들은 조선 전기 삼포왜란 당시 공을 세워 경산현령과 양산군수를 역임한 박계조의 세 아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이 세 지파를 가리켜 장파, 중파, 숙파로 구분하고 있다.
2010년 현재 도진리에는 입향조 박경의 19세손부터 24세손까지 약 90가구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에서 장파가 30가구, 중파가 45가구 그리고 숙파가 15가구를 구성하고 있다.
[도진리 고령박씨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종회]
도진마을의 고령박씨는 ‘고령박씨 도진종회’를 비롯해 세 지파가 종중을 구성하고 있다. 도진종회는 종회를 대표하고 종중 발전을 위한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회장과 총무 등의 임원이 종회 일을 담당하고 있다. 각 지파의 성원들로 구성된 종중은 각기 ‘죽연종중’, ‘학암종중’, ‘낙락당종중’이라 부른다. 이들 세 종중은 각 종중 선조들에 대한 묘사를 수행하고 선영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회와 같은 출계 집단의 조직화는 조상 숭배를 위한 제사가 묘제사로 넘어가는 시점, 즉 소종의 대종회와 관련이 있으며, 경제적 기반을 비롯한 제반 여건의 형성과 밀접히 관련된다. 17세기 이후 부계 혈연 중심의 친족 관행이 보편화되면서 지역 사회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했던 부계 혈연 집단마다 조상 숭배와 선영 관리를 비롯하여 족계 창립, 누정과 재실 건립, 족보 편찬, 서원과 사우 건립, 정려 포장 및 증직을 위한 활동을 경쟁적으로 전개하였다. 도진마을의 고령박씨들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종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문중 활동을 전개해 왔다.
현재 도진종회를 구성하는 세 종중은 묘사 수행을 비롯한 선영 관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는 종중의 위세와도 관련된 문집 간행 및 누정 건립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대표적으로 『죽연집(竹淵集)』과 『학암집(鶴巖集)』을 비롯해 16세기에서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여러 종중 성원들의 문집을 발간하였다.
도진마을에는 죽연정사(竹淵精舍), 남고정사(南皐精舍), 경매정(景梅亭), 낙락당(樂樂堂), 모현정(慕賢亭), 문연서원(文淵書院)과 학암정(鶴巖亭) 유허지 등 고택과 서원, 누정, 재사 등 문중 활동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나 유적이 산재해 있는데, 모두 종중 후손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이다.
죽연정[죽연정사의 전신으로 원래 도진리 마을 입구 우곡면 노인회관 부근에 있었다고 함]은 장파의 파조인 박윤이 조식과 배신, 윤규 등과 음풍농월하던 고령 지역 최초의 정자이다.
남고정은 남고(南皐) 박응형(朴應衡)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서 후손들이 건립한 건물이다.
학암정은 중파의 파조인 학암 박정번이 수련하던 곳인데, 정자 내에 문연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문연서원은 지역 사림에서 박정번의 아버지 낙락당 박택과 스승인 월오 윤규를 함께 배향하는 서원으로 건립했으나 조선 후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현재는 그 터에 비석을 세워 두었다.
경매정은 박효선(朴孝先)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낙락당은 박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고, 모현정은 훼철된 문연서원을 대신해 서원에서 배향된 오현에 대한 향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문연재로도 칭하는 모현정은 도진마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충효마을로 불리는 도진리]
현재는 많이 쇠락한 편이지만 저명한 집성촌의 경관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 도진마을에서 세거해 온 고령박씨는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왕성한 문중 활동을 통해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특히 네 명의 문과 급제자와 여덟 명의 무과 급제자를 비롯해 열 명의 소과와 음사를 배출했으며, 이들 중에는 임진왜란을 통해 의병으로 활동한 인물과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 다수를 차지하여 도진마을은 충효마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도진종회는 연중 양력으로 1월, 3월, 6월, 9월 등 모두 네 차례 모임을 가지고 있다. 도진종회의 각 지파에서 행하는 종중회는 연초와 한여름인 중복을 전후한 시기에 모임을 가지고 있다. 연초의 모임은 총회의 성격을 가지며, 중복에 행하는 모임은 묘사를 위한 모임이다. 장파는 음력 시월 보름, 중파는 음력 시월 보름 이후 첫 일요일 그리고 숙파는 음력 시월 열엿새에 묘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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