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20301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석유 경북총판 고령지부 1호점]

연조3리와 쾌빈리의 경계를 이루는 국도 33호선 자락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고령 지역에 석유를 공급해 온 상점이 있다.

영창상회 로 알려진 이곳은 전동기나 절삭기와 같은 공구, 시멘트·타일·목재를 비롯해 각종 건자재와 경유·석유 등의 기름을 취급하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영창상회는 현재 상점을 운영하는 김인태[1952년생] 씨의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0년 무렵에 처음 문을 열었다.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서 태어난 김인태 씨의 아버지는 20대를 일본에서 보냈는데,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귀국하여 현재의 자리에 점포를 열었다고 한다. 점포를 개설할 당시 잡화와 기름을 함께 취급하면서 영창상회는 고령 지역에서 기름집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상점의 흥망성쇠]

기름집을 개점할 당시 김인태 씨의 아버지는 경상남도 마산에 가서 수입된 경유와 석유, 휘발유 등을 매입하여 기름집을 운영하였다.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이었던 당시에는 정미소를 비롯해 가정에서 야간에 사용할 등잔 기름에 이르기까지 석유류의 사용처가 많았다. 그만큼 장사도 잘 되어 영창상회는 길 건너편의 양조장과 함께 고령에서 꽤 유명한 업소가 되었다. 이런 호황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영창상회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낙동강의 서쪽에 위치한 고령 지역은 인민군이 점령했고,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면서 고령면[현 대가야읍]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영창상회 일대는 길 건너편의 양조장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건물이 폭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전쟁 기간 타지로 피난했던 김인태 씨 가족은 전쟁이 끝나자 폭격으로 폐허가 된 상점 자리에 천막을 치고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전쟁의 상흔은 상점만 폐허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장사로 번 돈을 유일한 금융 기관이었던 농업협동조합에 예치했는데, 금융 기관이 폭격으로 파괴되면서 모든 장부가 소실되어 예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 김인태 씨는 당시의 어려움에 대해 피난 후 귀향길의 누런 들녘에서 추수하던 농민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는 아버지의 회고담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다.

천막을 짓고 장사를 다시 시작한 영창상회는 어렵게 상점을 운영하면서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전후 물자가 귀한 상황이어서 어렵기는 했지만 구하는 족족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했기 때문이다. 현금을 예치했다가 손해를 본 것 때문에 전후에는 수익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이런 방식으로 상점과 살림집을 조금씩 확장할 수 있어서, 1950년대 말엽에는 현재의 규모로 상점을 확장했고, 1961년에는 살림집을 기와집으로 개축할 수 있었다. 20㎡도 채 되지 않는 면적의 다락방이 딸린 상점과 방 한 칸으로 시작한 살림살이가 10배를 훨씬 넘는 규모로 확장된 것이다.

석유류와 함께 건자재와 공구를 함께 판매하면서 상점은 날로 번창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반신불구가 되면서 영창상회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했다. 자녀들이 상점을 운영하기에는 아직 어려 집사를 들여야 했으며, 아버지의 병간호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남을 들여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익은 이전만 못해졌고, 사업은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대를 이은 기름집]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소도읍 가꾸기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영창상회는 다시 번창하였다. 또한 김인태 씨를 비롯한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상점을 직접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영창상회의 번성에 한 요인이 되었다.

김인태 씨는 3남 1녀의 막내인데 가업을 계승했다. 맏형이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이 어수선할 때 친척의 권유로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신학대학을 나와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둘째 형과 막내인 김인태 씨가 가업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현재 둘째 형은 대가야읍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기름집의 대를 이었고, 김인태 씨도 영창상회를 이어 받아 석유와 경유, 건자재, 공구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정보제공]

  • •  김인태(남, 1952년생, 고령읍 연조리 주민, 영창상회 운영)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