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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20103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동락

[옛이야기가 숨어 있는 구신거리]

국도 26호선 을 타고 고령읍내로 들어와 고령공영주차장에서 고령보건소 방향으로 올라가는 마을길을 연조리 사람들은 ‘구신거리’ 혹은 ‘귀신나무거리’라고 부른다.

구신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대가야국 때 조서(詔書)를 발표하여 붙이는 현재의 게시판과 같은 조서문(詔書門)이 왕궁 근처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마을을 연조(延詔)라고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연줄, 인줄이 되었다. 또, 대가야국의 아홉 명의 신하가 나무 아래에서 정자를 지어 국사를 의논하고 주연을 베풀었다 한다. 그 때문에 나무는 구신(九臣)나무 또는 귀신나무라고 하고, 그 거리는 구신거리라고 불렀다. 그 모목(母木)은 죽어 없어지고 현재 있는 나무는 수령이 약 320년이나 된다.”

‘연조’와 ‘구신거리’는 모두 대가야국 때 왕이 조서를 반포하고, 또 신하들이 국사를 의논하고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구신거리는 먼 옛날 대가야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구신거리는 고령공영주차장에서 고령학생체육관 방향으로 올라가는 ‘연조길’을 말한다. 이 거리는 대체로 고령향교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는 곳에서 고령보건소 사이의 약 300~400m 정도의 도로이다.

구신거리의 진입로 부근에는 구신정(九臣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비록 격식을 갖추어 고풍스럽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대가야의 아홉 신하가 국사를 의논했음을 염두에 두고 지은 정자이다. 현재는 연조리의 마을 어르신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면서 휴식을 취하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구신정에서 약 20m 정도 올라오면 왼쪽 언덕 위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나무가 바로 아홉 신하가 나무 아래에서 국사를 논했다고 전하는 구신나무의 후손인 셈인데, 현재 고령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연조리 434번지이고, 지정 번호는 ‘11-19-1-8-1’이다.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나무의 수령이 320년이었으니, 지금은 대략 350년쯤 된다. 나무 밑동의 둘레는 대략 3m, 높이는 15m 정도이다. 이곳이야말로 대가야의 아홉 신하와 관련된 ‘전설의 고향’의 현장인 셈이다. 이 구신나무를 지나 고령보건소 쪽으로 구신거리를 따라 난 도로 좌우측에는 수령 30~40년 된 벚나무가 서 있어 이른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여 옛 향취를 더해 준다.

[구신거리의 연원]

그런데 왜 고령 지역 사람들은 대가야의 전설과 관련된 이 거리를 구신거리라고 이름 붙였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가야의 건국 신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가야에는 두 가지 내용의 건국 신화가 전해 온다. 첫째는,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하면서 신라 후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석이정전(釋利貞傳)』을 인용한 대가야 중심의 건국 신화이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의 천신인 이비가(夷毗訶) 사이에 태어난 두 형제 가운데 형은 대가야 시조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이 되었다.”

그런데 대가야 중심의 이 건국 신화에는 아홉 신하가 등장하지 않아 구신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가야의 또 다른 건국 신화는 고려 후기에 일연(一然)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쓰면서 이전 시기 김해의 지방관으로 파견된 어떤 문인이 지은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인용한 금관가야 중심의 건국 신화이다.

“아도간(我刀干) 등 9간(九干), 즉 아홉 명의 추장들이 구지봉(龜旨峰)에 모여 「구지가(龜旨歌)」를 부르자,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 알이 내려왔고, 그 알에서 여섯 명의 동자가 태어났는데, 가장 먼저 태어난 동자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동자가 각각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사실 우리가 지금 흔히 알고 있는 가야의 건국 신화는 바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관가야 중심의 수로왕 건국 신화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가야 중심의 건국 신화와 달리 금관가야 중심의 건국 신화 속에는 9간, 즉 아홉 명의 신하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구신나무 전설은 『가락국기』의 건국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즉, 대가야의 건국 신화에는 아홉 신하의 이야기가 없었으나 금관가야의 건국 신화에서 빌려 와 아홉 신하들이 국사를 돌보았다는 전설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구신거리를 지나가는 고령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옛날 대가야 시대에 국사를 의논했던 아홉 신하를 떠올리면서 구신나무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곤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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