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A01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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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동락 |
[100년 전통의 고령초등학교]
2006년 7월 2일은 고령초등학교는 물론 고령 지역 사람들에게도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바로 대가야의 후예를 기르는 고령초등학교가 문을 연 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고령초등학교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정 앞에 ‘개교 백년’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령초등학교는 연조리 주민뿐만 아니라 고령 지역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전통의 상징이자 영남의 인재를 양성하는 산실이란 자부심이 배어 있는 곳이다.
고령초등학교는 1906년 7월 군수 윤하영(尹夏榮)이 근대적 교육 기관인 고령보통학교(高靈普通學校)를 설립한 데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개월 후인 1906년 8월에 학교 이름을 영신학교(靈新學校)로 바꾸고 지역 유지의 출연으로 운영되다가 1908년 5월 군수 유진형(兪鎭瀅)이 지역 유지와 힘을 합해 운영하면서 우신학교(又新學校)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우신학교는 1910년 7월 일제에 의해 사립고령보통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1911년 9월에는 다시 고령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이 해 처음으로 여섯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당시의 학교 건물은 현재의 고령향교 명륜당과 그 주변의 건물을 활용했다. 그리고 1938년 4월 금림공립심상소학교(錦林公立尋常小學校), 1941년 4월 금림공립국민학교(錦林公立國民學校)로 교명을 개칭하였다.
고령초등학교는 개항기 민족의 주권이 외세로부터 위협을 받던 시기에 지역 유지들이 자금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의 자존 의식을 고취한 곳이다. 이러한 전통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 운동의 산실로 계승되었는데, 특히 1920년대부터 우신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인 1946년 6월에는 학교 이름을 고령국민학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1949년 3월 교사(校舍)를 고령향교에서 지금의 [대가야읍 연조리 151번지]로 옮기면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1994년 지금의 대가야읍 내곡리에 자리한 내곡국민학교를 통폐합하고, 1996년 3월에는 고령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0년 2월 고령초등학교는 100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개교 이후 2010년 2월까지 졸업한 학생 수는 총 1만 6000명이 넘는다.
[고령의 미래는 우리들 손에……]
고령초등학교는 대가야읍내에서 성주 방면으로 뻗어 있는 국도 33호선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 교정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큰 왕버들 한 그루가 서 있다.
학교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나무로 말없이 100년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아담하게 만들어진 기와지붕의 보호각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보호각 안에는 조그마한 우물이 있는데, 바로 대가야의 왕이 마셨다는 우물인 왕정(王井)이다.
고령초등학교 졸업생들에게 학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왕정’이라고 대답했다. 왕정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 보자 “대가야의 왕이 마시던 우물”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현재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고령초등학교 동문들 대부분이 모교인 고령초등학교를 생각하면 교정의 한 켠에 위치한 ‘왕정’과 ‘대가야의 왕’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왕정’과 ‘대가야’는 고령초등학교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고령초등학교 교정을 둘러싼 담장에는 ‘대가야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고령 지역의 대가야 유적과 유물들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학교 건물 내에는 왕정도서실, 개교100주년 기념역사관, 왕정학습장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왕정과 여러 가지 문화유산을 학습하면서 저절로 대가야를 떠올리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고령초등학교는 2008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2년간 ‘경상북도 교육청 지정 문화유산 시범학교’로 지정되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대가야와 고령 지역의 문화유산을 체험·탐구하는 활동을 교육 과정 속에 포함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대가야’에 대한 문화적 자긍심과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고령초등학교 재학생들의 ‘고령 사랑’의 마음은 ‘시범학교 운영보고회’[2009년 11월 16일]에서 전시된 학생들의 체험·탐구 보고서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지난 100년간 고령초등학교를 졸업한 1만 6000여 명의 졸업생들은 사회 각처에 진출하여 고령과 대가야를 알리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고령초등학교는 대가야의 문화유산과 이를 활용한 교육 및 체험 학습을 통해 ‘대가야’의 후예들을 기르는 교육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령초등학교와 그곳을 졸업한 대가야의 후예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고대사가 ‘삼국 시대’가 아닌 가야를 포함하는 ‘사국 시대’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교정에서 만나는 반짝이는 학생들의 눈망울 속에서 대가야 후예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가꾸어 나갈 ‘대가야 르네상스’, 고령의 희망찬 미래가 비쳐진다. [홍정임 선생님은 2010년 9월 김천시 다수초등학교로 전근하였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