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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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Woro Ferry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
집필자 | 황상일 |
성격 | 옛 나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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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낙동강 변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월오나루터가 있는 우곡면 월오리는 원래 고령군 하미면에 속하는데 소학산 밑에 위치하여 달오 또는 월오(月塢)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오동이 되었고 우곡면에 편입되어,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월오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을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며 울분을 달래다가, 왜적에게 붙잡혀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며 울었다고 한다. 달오, 월오라는 지명은 윤규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월오나루터 인근에는 윤규 비가 세워져 있고, 월오나루터 뒷산에는 옹달샘이 남아 있다. 오래전부터 겨울철 마을 주민이 물을 길을 때 옹달샘 물이 갑작스레 흙탕물로 변하고 넘쳐서 물을 길러 오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이 많이 흘러내리면 그해 여름에 큰 홍수가 온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지금은 새마을 사업으로 우물 어귀를 막아 물이 흘러내리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건립경위]
월오나루터는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 고령과 창녕 일대의 주민들이 왕래하기 위해 만든 나루이다. 고령 일대의 주민들이 월오나루터를 통해 낙동강을 건너 창녕장이나 멀리 달성, 대구로 이동할 때 쌀이나 보리 등의 농산물을 실어 나르던 곳으로, 회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하므로 매우 중요하였다. 이 일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지인 대구로 유통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월오나루터를 건너 창녕장으로 옮겨졌다.
[변천]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후 월오나루터는 대구와 유통하던 화물을 철도편에 빼앗겨 예전과 같은 관계는 끊어졌다. 주로 월오나루터를 이용해 대구로 이동하던 물산과 사람들이 새로운 육상 교통의 발달로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고령군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일대를 연결하는 우곡교가 개설되기 전까지 이 일대 사람들의 왕래는 물론 농산물 등의 수송 수단으로 유일하게 나룻배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낙동강을 연결하는 우곡교가 개통되면서 명맥이 유지되던 월오나루터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현황]
2010년 현재 월오나루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나루터가 있던 일대에는 2008년 2월 1일 우곡교가 개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