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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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下老多-由來 |
영어의미역 | Origin of Harod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경란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서 하로다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하로다의 유래」는 노인들이 많다는 뜻과 노론의 무리가 많은 곳이란 뜻을 지닌 지명유래담이다. 다산면 송곡리의 하로다(下老多)마을은 금곡(金谷) 혹은 송곡(松谷)이라 일컫기도 한다. 금곡은 가을에 단풍이 들면 골짜기가 비단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생긴 것이고, 송곡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생긴 것이다. 마을의 서남쪽에 위치한 송곡리는 마을을 형성할 때에 수성나씨, 함안조씨, 안동권씨의 세 성씨가 개척하였다 하여 삼동(三洞)이라고 하였다. 이 송곡에는 ‘하로다’ 또는 ‘아랫놉대기’, ‘아랫놉닥’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23일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주민 조정수[남, 76]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선생이 영조 임금의 아들[사도세자]의 경종사호(景宗賜號) 문제로 장희빈에게 휘말리어 제주도로 귀향을 가게 되었다. 이때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고령군 다산면 삼동의 동쪽 낙동강 가에 있는 마을인 송곡리의 많은 백성이 귀향을 가는 송시열 선생을 환영 차 나왔는데, 우암 선생이 잠깐 쉬어갈 때 ‘노인들이 많다’고 하여 노다(老多)라고 하였다. 이것의 음이 변하여 ‘놉대기’ 또는 ‘놉닥’이라 하고, 아래에 있다고 하여 ‘아랫놉대기, 아랫놉닥, 하로다’라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는 ‘놉대기’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노강서원(老江書院)이 있어 노론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서원에 많이 모였다고 하여 ‘노다’라 하였고, 이것의 음이 변하여 ‘놉닥’, ‘놉대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하로다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노인 혹은 노론의 무리가 많은 곳’이다. 이 이야기는 다산면 송곡리의 마을 지명인 ‘하로다’는 송시열을 환영 차 나온 노인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과 노강서원에 노론을 따르는 무리가 많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는데, 이후 ‘하로다’의 ‘노다’가 그 음이 변하여 ‘놉대기’ 또는 ‘놉닥’으로 변했다는 지명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