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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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再祐將軍- |
영어의미역 | General Gwak Jaeu and Waeyangmot Pon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경란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이 전공을 세웠다는 전쟁무용담이자 후퇴하던 왜군이 많이 빠져 죽었다는 연못에 대한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 곽재우 장군은 조선시대의 의병장으로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경상도 의령(宜寧) 출생이다.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으로 문무에 모두 뛰어났으며, 1585년(선조 18)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령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 270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김복조[남, 76]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유명했던 곽재우 장군은 이곳 고령에서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장군은 수가 굉장히 많은 왜군들과 이 지역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장군은 이 지역을 사수하지 못하면 전세가 불리해질 것이라 판단하여 수적으로 열세한 휘하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다짐했다. 장군은 왜놈 군대를 살펴보며 말하기를, “비록 저들은 수적으로 우리보다 많다고 하나 장수를 처치하면 저들의 기세는 일시에 무너지리라.”고 하였다.
이에 곧 진격하여 왜군들과 대적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장군은 곧장 왜놈 장수를 향해 힘껏 말을 달려 나가 싸웠다. 장군은 귀신같은 칼솜씨와 용맹한 기상으로 곧 왜놈 장수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었다. 왜놈들은 장수의 목이 베어지는 것을 보고 진열이 흐트러지며 우왕좌왕하다가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왜놈들은 앞 다투어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낙동강이 넘쳐흘러 못을 이룬 곳이 있었는데, 곽재우 장군이 말을 달려 도망가는 왜놈들을 향해 진격하자 왜놈들은 못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왜놈이 많이 빠져 죽었다고 하여 이곳을 왜양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곽재우 장군은 성산면 일대에서 왜군과 대치하여 전멸하는 큰 전승을 이루었다.
먼 훗날 이 못 아래를 파 보니 수십 짐 분량의 많은 유골이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이 왜양못에 땅이 메워지고 그 지대에 공장이 세워져 흔적만 남았을 뿐 전설로만 전한다.
[모티프 분석]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의 주요 모티프는 ‘곽재우 장군의 영웅담’, ‘수많은 왜군이 죽은 왜양못’ 등이다. 이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 곽재우 장군의 영웅담으로, 성산면 일대에서 왜군과 대치하여 전멸하는 큰 전승을 올렸다는 전형적인 영웅의 인물전설이다. 대다수의 무용담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켜 나라를 구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 역시 이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