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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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亭-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of a Tree in Gangjeongmaeu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
집필자 | 남경란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강정마을에 있는 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강정마을 나무에 얽힌 전설」은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자결한 영월댁 사이의 고부갈등담이다. 성산면(星山面) 강정리(江亭里) 강정(江亭)은 조선 중엽 성봉화(成鳳和)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수년 후 마을 뒷산 기슭인 낙동강 주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강변에 정각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낙동강을 등에 업은 강정마을 뒷산인 봉화산 중턱에 유난히 돋보이는 나무가 하나 있는데, 길이가 약 5m이고 넓이가 두 아름이 넘는 제법 큰 나무이다. 실제로 올라가서 보면 그곳에 있는 나무 가운데 오직 그 나무만 유별나게 보인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강정마을 주민 성수용[남, 80]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 강정마을에는 혹독한 시어머니와 멀리 동해 영월에서 시집와 영월댁이라 불리는 며느리가 있었다. 16세에 시집을 와서 병환이 드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온갖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던 영월댁은 추운 겨울에도 봉화산 골짜기를 넘어 얼어붙은 낙동강 얼음을 깨뜨리고 손이 부르트도록 빨래를 하였다. 아침마다 물을 기르러 갈 때에도 항상 봉화산 골짜기를 넘어 낙동강으로 가서 물을 길어 오곤 했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잠시 봉화산 길목에 있는 한 나무에 기대어 쉬면서 여러 가지 넋두리를 하고 돌아오곤 하였다. 한 해가 지나서 시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그 이후로 남편은 매일 술만 마시고 급기야 도박에 맛을 들여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어려워진 집안 사정 가운데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더욱 심해졌고, 영월댁은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날마다 품을 팔며 어렵게 끼니를 잇고 있었다.
하루는 영월댁이 낙동강 강가에서 빨래를 끝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그 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살아 있을 이유가 없네.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하나. 이 한세상 살면서 웃을 날이 없네.”라고 넋두리 하며 그 나무에 목을 매었다.
날이 저물도록 저녁을 지으러 집에 돌아오지 않는 며느리를 탓하며 아들과 함께 산에 올라간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죽음에 기겁을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녀의 넋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 나무 밑에 땅을 파고 대충 묻고는 마을을 떠났다.
몇 달 후 그 나무의 뿌리 하나가 크게 자라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므로 강정마을 나무꾼이었던 강씨가 그 뿌리를 잘랐는데, 그 날 저녁 불의의 사고로 강씨는 다리를 잃게 되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이를 심상히 여겨 알아봤더니 예전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소문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그 뿌리가 있던 자리를 파서 영월댁의 유골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고, 해마다 그곳에서 위령제를 올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강정마을 나무에 얽힌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심술궂은 시어머니’, ‘심성 착한 며느리의 원한’, ‘강씨의 사고와 위령제 실시’ 등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알게 하는 속담의 예로 “미운 열 사위 없고, 고운 외며느리 없다.”, “흉이 없으면 며느리 다리가 희단다.”,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 등을 들 수 있다. 「강정마을 나무에 얽힌 전설」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전해지고 있는 전형적인 고부간 갈등담이자 시신을 아무 곳이나 매장하던가 이에 해코지 하면 불운이 일어난다는 지역 주민들의 풍수담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