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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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崇山-安東將軍李美崇 |
영어의미역 | Misungsan Mountain and Andong General Yi Misu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남경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미숭산과 이미숭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미숭산과 안동장군 이미숭」은 이미숭(李美崇) 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상원산(上元山)을 미숭산(美崇山)이라 불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인물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미숭산은 고령군 대가야읍과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숭은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집권에 항의하였으며,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저버리지 않고 정몽주(鄭夢周)[1337~1392], 이색(李穡)[1328~1396] 등과 함께 끝까지 항거하였다. 미숭산은 이미숭이 정상에 높이 3m, 둘레 1.5㎞의 미숭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이성계 군사들과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야읍] 지산리 주민 김도윤[남, 77, 사학자]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대가야읍에는 이미숭 장군을 기리기 위해 상원산을 미숭산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말 여진족을 진압하고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명성을 떨치며 1930년 구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오자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천수사 앞에서 그를 환영하며 대승을 축하했다고 한다. 그 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 무렵 고려왕조를 지키려는 이성계의 세력에 일조한 사람 중에는 안동장군 이미숭이 있었다. 이미숭은 고령인인 예부상서 이헌의 자손으로, 호는 반곡이라 하였다. 어릴 때부터 항상 충절과 의리에 대한 언행을 일삼았다. 1361년 정몽주에게서 경학을 배웠으며, 고려가 쇠퇴해져 가는 것을 한탄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었다. 그 후 무반으로 등용되어 관원으로 출세하였고, 늘 병서를 읽으며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미숭은 북방 오랑캐의 침략과 왜구의 노략질이 있을 때마다 종종 전장으로 나아가 무찔렀으며, 마침내 안동장군이란 직책을 받았다.
1392년 선죽교에서 스승인 정몽주가 피살을 당하고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우자, 이미숭은 군사들을 이끌고 고려의 광복을 위해 여러 차례 접전을 치렀다. 그러나 패배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고령과 합천의 접경 지역인 상원산[지금의 미숭산]에 들어가 후일을 도모하였으나 결국 거사를 포기하고 사망하였다. 이미숭 장군의 사망에 대하여는 전사하였다는 설과 자결하였다는 설이 있다. 후세에 그의 충심을 추모하기 위하여 상원산을 미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미숭산과 안동장군 이미숭」의 주요 모티프는 ‘이미숭의 충절’, ‘미숭산으로 바뀐 상원산’ 등이다. 이 이야기는 고려왕조를 지키려고 이성계의 세력과 접전을 벌인 안동장군 이미숭과 관련한 인물설화이다. 또한 이미숭은 고려의 광복을 위하여 상원산에 들어가 거사를 준비하다가 사망하였는데, 그의 충심을 기리기 위하여 상원산을 미숭산이라고 명명했다는 지명유래설화이다. 고령 지역에서는 김면(金沔)[1541~1593] 장군, 미숭 장군 등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등장하며, 대가야와 관련된 인물들의 일화들이 소재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미숭 장군과 관련된 설화로는 「가뭄도 비껴가는 미숭산과 기우천」, 「단비 내린 미숭산의 천제당」, 「미숭 장군과 애마」, 「미숭산과 무남독녀」, 「미숭산과 아낙네의 속적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