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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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靈人-加耶-七-城 |
영어의미역 | Grief of Gyryeong People, Gaya's Seven Tombs and Fortres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
집필자 | 김남경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가야의 7무덤과 성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고령인의 아픔, 가야의 7무덤과 성」은 대가야의 7개의 왕릉으로 짐작된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임진왜란 때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미숭산성의 축성담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4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야읍] 신리 주민 장창수[남, 65]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회천교를 지나면 금산재가 있는데, 그 금산재를 넘어가면 ‘가야의 7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왕릉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령이 대가야의 터전이고, 평범한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무덤의 모양과 크기가 범상치 않아 누구의 능인지는 모르나 왕릉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쪽으로 이어진 산의 마을에는 예전에 우마차가 지나 다녔다고 한다. 또한 ‘미숭산’이라고 하는 산에 성이 세워져 있는데, 그 성은 임진왜란 때 고령 사람들이 쌓은 것이라 한다. 임진왜란 당시 미처 피난가지 못했거나, 피난 갈 곳이 없는 고령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이 성을 쌓아 방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고령 사람들의 아픔과 시련을 느낄 수 있으며, 지난날의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대처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모티프 분석]
「고령인의 아픔, 가야의 7무덤과 성」의 주요 모티프는 ‘왕릉인 가야의 7무덤’, ‘미숭산에 세워진 성’ 등이다. 특히 고령 사람들이 미숭산에 성을 쌓아 왜구를 방어했다는 점은 전쟁담과도 관련이 있다. 고령 지역에는 가야산, 미숭산, 만대산 등의 큰 산이 있고 대부분의 마을이 조그마한 봉우리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소가천, 대가천, 안림천, 회천 등 하천이 많아 지명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