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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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褓負商遺品- |
영어의미역 | Relics of Goryeong Sangmujwasa |
이칭/별칭 | 고령 상무사 좌사계 유품,고령 상무좌사 유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460[대가야로 120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경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7월 28일 - 보부상 유품(5) 국가민속문화재 제30-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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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보부상 유품(5)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전적|물증 자료 |
제작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장처 | 대가야박물관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460[대가야로 1203] |
소유자 | 고령상무사계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대가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령 상무좌사의 전적과 물증 자료들.
[개설]
보부상 유품(5)으로는 『선생안(先生案)』, 『반수선생안(班首先生案)』, 『접장선생안(接長先生案)』, 『계안(稧案)』, 『좌사계규약(左社稧規約)』, 『고령군좌사절목(高靈郡左社節目)』, 『좌사계규약급계원명부입하부록(左社稧規約及稧員名簿入下附錄)』, 『상무사장정(商務社章程)』, 『상무사장정부칙(商務社章程附則)』, 『동아개진교육회상업과장정(東亞開進敎育會商業課章程)』 등의 전적들과 물금장(勿禁仗), 딩각, 인장(印章) 2과(顆), 인통(印筒) 등 물증 자료 총 15건 19점이 있다. 보부상 유품(5)은 1992년 7월 28일 국가민속문화재 제3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전적들은 필사본 또는 활자본의 형태로 남아 있다. 『선생안』은 필사본으로 가로 37㎝, 세로 55㎝의 크기이다. 『계안』과 『좌사계규약』, 『고령군좌사절목』, 『좌사계규약급계원명부입하부록』도 필사본인데, 크기는 『계안』이 가로 27.7㎝, 세로 47.5㎝, 『좌사계규약』이 가로 29㎝ 세로 31.5㎝, 『좌사계규약급계원명부입하부록』이 25.8㎝ 세로 17.5㎝이다. 『고령군좌사절목』은 가로 13.5㎝ 세로 33.4㎝ 크기의 첩장으로 되어 있다. 『상무사장정』과 『상무사장정부칙』은 활자본이며 크기는 각각 가로 21.5㎝, 세로 33.7㎝와 가로 20.3㎝, 세로 30㎝이다. 『동아개진교육회상업과장정』은 필사본이며 가로 28㎝, 세로 40㎝의 크기이다.
물금장은 지름 3.5㎝, 길이 81㎝이며 손잡이 부분에 쌀 미(米)자가 새겨져 있다. 또 꼬리 부분에는 쇠로 된 물미가 끼워져 있으며 몸통 부분에 ‘고령좌지사물금장(高靈左支社勿禁仗)’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인장 2과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씩이며, ‘상업과고령좌사무장(商業課高靈左社務章)’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인장을 넣어 보관하던 인통들은 지름과 높이가 각각 4㎝인 원통형이며 청동으로 만들었다.
[특징]
『선생안』은 백초산(白楚山)에 대해 첫 장 첫 줄에 기록하고 있으며, 1866년(고종 3) 고령 지역에서 부보상단이 설립되던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지역 반수와 접장, 반수공원·본방공원·도공원·별공원·본소공원·한산공원·문서공원·도집사 등 임원들의 이름과 신분, 주소지 등을 기록해 두었다. 그런데 고령 상무좌사 유품 중 하나인 『선생안』의 첫 장에 기록된 백초산은 조선 부보상단의 시조인 백토산(白兎山)의 이름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반수선생안』에는 백토산의 이름을 기록한 후 지역 상단의 초대 반수인 유진교(兪鎭敎)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수를 역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접장선생안』에는 1880년(고종 17)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접장을 역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전적들을 검토해 보면 고령 지역의 부보상단이 언제,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운영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계안』은 1922년 반수를 역임했던 유은모(兪殷模) 이후 현재까지 계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으며, 『좌사계규약』에는 계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적어두었다. 1927년 2월 17일부터 시행된 이 규약은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옛 예를 따라 좌사계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옛 조직 체계를 본떴음을 밝히고 있다. 규약은 이후 1932년과 1965년, 1971년에 각각 개정되었다. 규약에는 상여집을 운영하고 장례 도구를 대여하면서 그 비용을 징수하였음을 보여준다.
『고령군좌사절목』에는 좌사의 부조 내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좌사계규약급계원명부입하부록』에는 좌사계의 규약과 계원의 명단, 계의 금전 출납 상황 등 계의 운영 전반에 관한 것이 적혀 있다. 『상무사장정』은 1899년(고종 36) 6월 칙령 제19호로 반포된 것을 전국 각 지역 상무사에 배포한 것이다. 장정은 전문 20조로 되어 있다. 『상무사장정부칙』은 『상무사장정』에 27개조의 부칙을 마련한 것으로 1901년(고종 38) 배포되었다. 『동아개진교육회상업과장정』은 상무사가 해체된 후 동아개진교육회에 의해 반포된 것으로 상업과 예규, 상업과 장정, 부칙 예규 등이 기재되어 있다.
물금장은 원래 부상들이 지게를 받치기 위해 사용하던 지게 작대기이다. 물금장은 현재 용무늬가 새겨진 것과 쌀 미자가 새겨진 것 두 종류가 남아 전하고 있는데, 고령상무사에는 쌀 미자 무늬가 새겨진 것 하나만이 전해진다. 용무늬 물금장은 충청남도 부여와 한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저산8읍 상무사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 개가 남아 전한다. 쌀 미자가 새겨진 물미장은 고령상무사와 저산8읍 상무사에 각각 하나씩, 두 개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창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창녕상무사에 전하던 물금장은 20여 년 전 분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금장에 용무늬를 새긴 연원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부상들이 대가(大駕)를 호위한 공로로 받았다는 이야기와 이성계를 도운 공로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딩각은 부보상단을 소집할 때 불던 나팔인데 나무로 만들었다. 인장은 부보상단이 주고받던 문서의 말미에 날인하기 위한 것으로, 1881년(고종 18) 이래 중앙에서 새겨서 지급했다. 그렇지만 고령 상무사 좌사계에는 현재 당시의 것이 전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2과는 1904년(고종 41) 고령상무사가 해체된 이후 만들어진 것이며 나무 제품이다.
[의의와 평가]
보부상 유품(5)은 조선시대 각 지역 행상들의 현황과 조직 체계,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들이다. 오늘날 전통시장 상인들과 유통업자들이 이들의 활동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생각할 때 자료의 보존과 남아 있는 다른 자료의 발굴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