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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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津面-祭- |
영어의미역 | Gaejin-myeon Sacrificial Rite for The Guardian Post |
이칭/별칭 | 풍동골 장승놀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백중날 농사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농사꾼들이 음주가무를 하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
[개설]
개진면 장승제놀이는 세벌 논매기가 끝난 음력 칠월 백중날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장승에게 제사를 지내고 농사꾼들이 하루를 즐기도록 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풍동골 장승놀이’라고도 한다. 장승은 나무나 돌에 신이나 장수의 얼굴을 새기고 몸통에는 그 역할을 글로 새겨 넣은 신상(神像)이다. 장승은 지방에 따라 법수, 벅수, 장신(將神), 수살, 미륵, 돌부처, 장생(長栍)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다르게 일컬어진다. 장승은 마을이나 집단의 수호 장군이거나 기자(祈子), 치병, 이정표 겸 길의 신[路神], 비보(裨補)의 진압신(鎭壓神) 또는 수문장(守門將) 등 다양한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연원]
전라도 무주 지방에 임진왜란 때 부모를 잃고 오갈 데 없어 소농가에 의지해 살아가던 한 아이가 있었다. 바람처럼 떠돌아다닌다 하여 주위에서는 ‘풍동(風童)’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주인이 그에게 10년 동안만 열심히 일해 주면 사위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주인은 10년이 지나자 딸을 이웃 총각과 약혼시켜 버렸다. 이에 그는 주인의 집을 나와서 포목 행상을 하며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도중 고령군 개진면 양전동 장승백에 이르렀을 때 소나기를 만나 포목이 모두 물에 젖고 말았다. 풍동이는 옷과 포목을 장승에게 걸어두고 말렸는데, 잠깐 조는 사이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평생 처음으로 좋은 옷을 입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풍동이에게 사흘 안에 무주 집으로 돌아가면 주인집 딸과 혼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주인집으로 가보니 그 날은 그 집 딸의 혼인날이었다. 그런데 초례청(醮禮廳)에서 신랑과 신부의 발이 땅에 붙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풍동이가 마당에 들어서면서 주인집 딸을 부르자 그제야 딸의 발이 떨어졌다. 모든 정황을 알게 된 신랑 측에서는 혼인을 없던 것으로 하고 돌아갔다.
그 후 풍동은 주인집 딸과 혼인하고, 장승의 은혜를 잊지 못해 매년 논매기가 끝날 무렵이면 고령 양전동 장승백의 장승 앞에 찾아와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
[놀이도구 및 장소]
풍동이 죽고 나자 제사가 흐지부지되었으나,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장승의 효험을 믿고 있던 주민들이 제사를 다시 지내자 풍년이 들었다. 이후 제사가 마을의 연례행사가 되어 지금까지 계속된다. 장승제놀이 때가 되면 우선 농기구와 악기 등을 손질하고 놀이 준비를 한다.
당일 날이 밝자마자 오동나무 나발인 고딩이를 불면 마을 일꾼들이 모여든다. 이때 일꾼들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허리띠에 작은 대나무 가지를 꽂아 두르고 마을 앞 논 주위에 모인다.
[놀이방법]
마을 일꾼들은 논에 들어가 세벌 논매기를 행한 후 장승 앞으로 나가 제사를 지낸다. 마을의 상머슴이 좌상이 되어 머리에 관(冠)을 쓰고 소를 타고 앞서 가면 마을 사람들이 뒤따라간다. 상머슴이 제관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도중 물을 뒤집어쓰는데, 이는 풍동이가 소나기를 만나 옷이 젖는 과정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제관은 제향과 헌주 후 제문을 읽고 재배하는 것으로 장승제가 마무리된다. 이 때 제관은 젖은 옷을 벗어 장승에다 입혀 놓고 둘러 앉아 음복한다. 그런 다음 장승 주위에서 신명나게 풍물놀이를 즐긴다.
[생활민속적 관련 내용]
개진면 장승제놀이에서 일꾼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며 당해 농사의 고달픔을 풀기 위해 하루를 즐겁게 놀면서 풍년을 기원하였다. 원래는 장승에게 제를 올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는 형식적인 것이 되었으며, 풍악을 울리고 음식과 술을 먹는 놀이로 변해 갔다.
장승제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지역성을 갖는다. 애틋하면서도 기이한 전설이 결부되며, 영험함의 주술성도 띤다. 이 놀이를 통해 잊혀져가는 장승의 전통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음은 물론 전라도 무주와 경상도 고령을 연결하는 영남·호남 화합의 상징성도 음미해 볼 수 있다.
[현황]
이 놀이는 처음에 ‘개진면 장승제놀이’라 부르다가 최근에는 ‘풍동골 장승놀이’로 개칭하면서 축제화에 따른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