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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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ilssam |
영어의미역 | Gilssam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다산면 송곡리 삼동마을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무명, 삼베, 명주 등의 옷감을 만들기 위한 기술과 행위.
[개설]
고령 지역 사람들은 나일론 등 화학 섬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길쌈으로 생산한 무명, 삼베, 명주 등의 자연 섬유로 모든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길쌈은 육아와 일상의 먹을거리 준비 외에 여성들의 중요한 살림살이 중의 하나였다. 여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일상복을 비롯한 의례복, 이부자리 등을 모두 손으로 만들었다.
무명길쌈은 가을 농사를 마친 후부터 겨울철에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가을에 무명을 수확하여 먼저 쐐기로 씨앗을 빼낸 솜을 생산하고, 활로 솜을 타서 실을 만들고 베를 짰다. 무명베로는 주로 솜을 넣어 만든 겨울옷이나 봄옷, 이불, 베개 등을 만들었다.
삼베길쌈은 모내기를 끝낸 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삼밭에 자란 삼나무를 잘라 단으로 묶은 다음 구덩이를 파고 불을 때서 껍질을 벗겨 냈다. 이어서 껍질을 잘게 쪼개 이은 다음 둥근 돌구를 이용해 실타래를 만든 뒤, 이것을 솥에 쪄내어 풀칠한 다음 ‘베를 삼아’ 실의 강도를 높였다. 이렇게 만든 실로 삼베를 짜서 치마, 적삼, 바지, 홑이불 등의 여름 용품이나 수의 등을 만들었다.
고급 옷감인 명주길쌈은 봄에 누에를 키워 고치를 생산한 다음 7~8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담가 실을 뽑아 물레로 감은 다음 명주 베를 짰는데, 명주는 혼수용의 이불이나 신랑의 바지저고리, 집안 어른의 바지저고리, 수의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쓰였다.
[변천 및 현황]
다산면 송곡리 삼동마을 여성들은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직접 길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들은 시집가기 전 친정에서 길쌈하는 법을 배웠다. 시집가서 입을 옷은 결혼 후 친정에서 해를 묵히는 시간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신랑이 입을 속적삼과 바지, 바지저고리, 두루마기, 그리고 자신의 속적삼과, 치마, 저고리를 주로 만들었다.
삼동마을에 사는 윤재임[여, 83세]은 길쌈을 할 때, 먼저 목화[명]를 쐐기에 넣고 돌려 가며 씨앗을 빼냈다. 이렇게 해서 분리되어 나온 솜을 활로 타서 피운 다음 꼬챙이에 말아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빼고 풀을 입혀 단단하게 만든 후 바디에 감아 베를 짰다. 삼베옷도 삼 껍질을 벗겨낸 다음 비슷한 방법으로 실을 만들어 베를 짰다. 고령 지역 여성들은 6·25전쟁 이후 거의 대부분 길쌈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전쟁 중에 거의 대부분의 베틀이 불탄데다, 그 무렵 공장에서 생산된 광목이 시중에 서서히 유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모든 일을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길쌈은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이 때문에 때로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실을 잣고 베를 짰는데, “예전 같으면 길쌈하느라 경로당에 이렇게 앉아 놀지 못하제.”라는 우곡면 도진리 여성 노인들의 말처럼, 길쌈은 여성들의 일상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 반복 작업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베 짜기 노래」도 불렀고, 공동 작업이 필요한 베 메기 등을 통해서는 여성만의 노동 품앗이 문화도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