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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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性濟 |
영어음역 | Gim Seongj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윤정원 |
성격 | 유학자|계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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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 |
성별 | 남 |
생년 | 1868년 |
대표경력 | 우신학교 교장 |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개설]
김성제(金性濟)[1868~?]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한주학파(寒洲學派)의 유학자로서 고령과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다.
[활동사항]
김성제는 1890년대 후반 서울로 상경하여 1898년 대구우체사 주사[판임관 5등]에 임명되었다. 1904년 대구실업신문사 이사를 거쳐 7월 대구우체사 주사를 사직하였다. 1905년 10월 대구광문사 총무에 임명되었고, 1906년 4월 대한자강회 회원이 되어 고령과 대구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고령군수 윤하영(尹夏榮)·최곤술(崔坤述)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 고령지회를 설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고령지회는 전국 최초의 지회 조직이었다.
또한 민중들의 계몽을 위하여 교육 사업도 많이 펼쳤는데, 고령의 사립학교인 영신학교를 설립하는 데 관여하였다. 그 후 1906년 5월 고령군 각 면의 학교 설립위원을 지냈으며, 7월 고령·성주·현풍 3개 군의 학교 시찰 등을 담당하는 일을 하였고, 1908년 영신학교를 계승한 우신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김성제는 김해규와 함께 교과서를 간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인쇄기를 구해 오기도 하였다. 또한 1909년 3월 31일에 설립된 고령군 자치민의소에도 참여하여 계몽 운동을 통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과 교육 운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