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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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洪植 |
영어음역 | Gim Hong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규배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개설]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등 인근 시·군과 교류전에서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시합에서 이긴 선수들은 고향에 돌아와 당시 트럭 택시를 타고 시가행진을 벌였는데, 그럴 때면 군민들이 모두 나와 그들을 환영하였다. 한 번은 트럭 택시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던 선수가 심하게 우승기를 흔들다가 깃대가 부러져 대나무를 붙여 보관하였다는 이야기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 온다. 그러나 고령 지역의 정구의 붐은 권복임이 떠나고, 일제강점기 말기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시들어졌다.
[활동사항]
김홍식(金洪植)은 백남주(白南柱), 유상호(兪尙浩) 등과 함께 고령 출신 제1 세대 정구 선수로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10여 년간 활약하면서 각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였다. 뒷날 제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고령군 체육회의 설립에도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