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49 |
---|---|
한자 | 郭泰珍 |
영어음역 | Gwak Taejin |
이칭/별칭 | 해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 870[답곡2길 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원 |
성격 | 독립운동가|정치가 |
---|---|
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 870[답곡2길 11] |
성별 | 남 |
생년 | 1917년 |
몰년 | 2006년 |
대표경력 | 민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개설]
곽태진(郭泰珍)[1917~2006]의 호는 해파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하였다. 묘소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곽태진은 1942년 3월 호의단(護義團)의 성일영(成一永), 도종표(都鍾杓) 등 동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현풍신사(玄風神社)를 불살라 민족혼을 일깨우려 하였다. 또한 고령, 청도 등의 경찰서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 봉기를 계획하던 중 1945년 5월 창녕군 이방면 산중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을 맞아 감옥에서 나온 뒤 정치에 뛰어들어 한국민주당 경북도당 청년부장 겸 사무총장을 지내고,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고령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1954년 5월 30일까지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서민호(徐珉濠), 엄상섭(嚴詳燮), 고영완(高永完) 등의 동료 국회의원들과 함께 1951년 3월 29일 국민방위군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4·19혁명 뒤인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고령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임기 4년의 민의원(民議院)에 당선되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1961년 5월 16일 국회가 해산되면서 국회의원에서 물러났다. 이후 민정당 달성·고령지구당 위원장, 신민당 달성·고령·경산지구당 위원장 및 지도위원, 민권당 부총재 등을 지내고 건국대학교 기성회 이사와 독립운동가연맹 이사를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과 1990년에 각각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1989년 10월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 현창비(顯彰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