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29 |
---|---|
한자 | 朴採煥 |
영어음역 | Park Chaehw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성격 | 독립운동가 |
---|---|
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성별 | 남 |
생년 | 1882년 |
몰년 | 1962년 |
본관 | 고령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채환(朴採煥)[1882~1962]은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도진리에서 박재필(朴在弼)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이틀 후인 4월 8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4월 8일 우곡면 도진리에 사는 박기태(朴基太) 집에서 혼례가 있었는데, 네 명의 일본 경찰이 혼례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을 우곡면사무소에 강제로 집합시킨 후 독립 만세 운동을 하지 말라는 시국 강연을 하였다. 박채환은 강연이 끝난 뒤 귀가하려는 수십 명의 군중에게 민족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고, 이에 군중들이 만세 운동에 호응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게 군중은 해산되고 박채환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