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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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慄 |
영어음역 | Gwak Yul |
이칭/별칭 | 태정(泰靜),예곡(禮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활동사항]
곽율(郭慄)[1531~1593]은 조선 중기 경상남도 성리학의 대표적 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많은 제자 가운데 특히 뛰어난 제자]로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명종 때 생원시에 급제하여 포산오현(苞山五賢)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특히 명종 때 영남 선비들이 요승(妖僧) 보우(普雨)를 축출하기 위해 상소할 때 소수(疏首)[상소문을 제출하는 일에 우두머리 인물]로 추대되었다. 1572년(선조 5) 성균관의 천거로 김천도·송라도의 찰방(察訪)·사포(司圃), 홍산군수, 예천군수, 초계군수를 역임하고 예빈시부정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다가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구광역시 달성군 소재 도동서원 별사에 제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