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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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相玉 |
영어음역 | O Sangok |
이칭/별칭 | 국서(國瑞),국포(菊圃)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창환 |
[정의]
개항기 고령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국서(國瑞), 호는 국포(菊圃). 오운(吳澐)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오연순(吳演淳)이며,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오상옥(吳相玉)[1847~1910]은 밖으로는 능숙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자, 인분을 약으로 먹이라고 하였다. 이에 인분으로 만든 약을 어머니에게 드릴 때면 매번 먼저 맛을 보고 드렸다. 그러한 정성이 약과 함께 어머니의 병에 효험을 보이면서 마침내 병이 낫게 되었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 속칭 너분등에 있다.
[상훈과 추모]
효성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표창과 함께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으며, 1906년(고종 43)에는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근재(近齋) 정지순(鄭之純)이 묘비명을 짓고, 소암(素庵) 김현동(金鉉東)이 행장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