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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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重 |
영어음역 | Park Taejung |
이칭/별칭 | 중래(仲來),용재(慵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하창환 |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래(仲來), 호는 용재(慵齋). 아들은 박섬(朴暹)[1696~1760], 손자는 박사연(朴思淵)[1732~1756]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종주(朴宗冑)이다. 양죽당 정완[참판공으로 임진왜란에서 창의함]의 5대손이다.
[활동사항]
박태중(朴泰重)[1677~1729]은 5~6세에 이미 완숙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었고, 장성하여서는 덕행을 겸비하고 남다른 효성과 우애를 보여 향리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드려 소생하게 하였고, 두 분의 상을 당해서는 6년간 시묘를 하였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사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태중의 효행에 대해 1750년 수차례에 걸쳐 고령, 성주, 합천, 현풍, 창영, 대구, 칠곡, 의령 등지의 사림들이 거듭 추거(推擧)하였으나 정려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3대 효행에 대한 정려를 추거한 휘귀한 자료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당대에 박태중의 효행이 공인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