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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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惟碩 |
영어음역 | Yi Yuseok |
이칭/별칭 | 대이(大而),매헌(梅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매헌(梅軒). 할아버지는 유일(遺逸)로 천거된 이동례(李東禮)이며, 아버지는 국포(菊圃) 이문룡(李文龍)[1548~1655]이며, 어머니는 진양하씨(晉陽河氏)이다. 이문룡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병자호란 당시 형 이현룡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나 항복 소식을 듣고 미산(微山) 아래에서 은거하면서 구도하여 미산처사(薇山處士)라고 불렸다. 부인은 숙인(淑人)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선무랑 이문우(李文雨)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유석(李惟碩)[1604~1657]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며 1630년(인조 8) 진사에 합격하였고, 1639년(인조 17) 문과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학유·춘추관기사관과 삼사(三司)의 언관직 등을 지냈다. 이어 전라도사로 나가 군비 증강에 힘썼으며, 1651년(효종 2) 함평현감을 거쳐 안주판관·영암군수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다. 영암군수로 있을 때 만기가 되고 친환(親患)으로 귀가하였다가 공무를 이탈한 죄로 유배 도중, 친상을 당하여 풀려난 뒤 곧 세상을 떠났다. 청렴 강직한 성품으로 선정을 베풀고, 문교를 크게 진흥시켰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에 『매헌집(梅軒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 기산동(箕山洞) 선영의 우측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암군수로 재직하면서 문교를 진흥시킨 공으로 흥학비(興學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