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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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設智 |
영어음역 | Do Seolji |
이칭/별칭 | 월광태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고대 대가야의 마지막 왕.
[개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 고령군조에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으로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대 520년이었다[高靈郡本大加耶國 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內珍朱智) 至道設智王 凡十六世五百二十年]”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대가야의 마지막 왕임을 알 수 있다.
[가계]
도설지는 522년 대가야 이뇌왕(異腦王)과 신라 이찬(伊湌) 비조부(比助夫)의 딸이 결혼하여 낳은 ‘월광태자(月光太子)’와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522년과 529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도설지의 이명(異名)인 월광태자는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석가모니가 과거세(過去世)에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의 이름으로 나병 환자를 치료하여 주기 위하여 자신의 골수를 뽑아 주고 스스로 몸을 버리는 선행을 하였다고 전한다. 법흥왕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대가야를 정복하겠다는 생각에서 붙여 준 이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활동사항]
도설지는 550년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친(親)백제 정책을 펴는 대가야를 떠나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장군과 귀족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대가야 멸망 직전, 대가야 사람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신라의 계획에 따라 마지막 왕이 되었다. 합천군 야로면에는 도설지가 세웠다는 월광사(月光寺)가 있는데, 아마도 도설지가 대가야 왕위에서 물러난 후 대가야 시조 신화가 깃든 가야산 자락에서 말년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