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79 |
---|---|
한자 | 嘉悉王-嘉實王 |
영어음역 | Gasilw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고대 가야금을 만든 대가야의 왕.
[개설]
가야금을 만든 가실왕(嘉悉王)은 금관가야의 겸지왕(鉗知王)이나 취희왕(吹希王)으로 보거나,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어 보국장군본국왕이라는 작호를 제수 받은 하지왕(荷知王)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은 이뇌왕(異腦王)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령현 고적조에 가실왕과 우륵(于勒)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대가야의 왕임이 분명하다.
[가계]
가실왕의 가계는 기록으로 전하는 바가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활동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받아서 만들었다. …… 신라의 고기에 가야국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加耶琴 亦法中國樂部箏而爲之 …… 新羅古記云 加耶國嘉實王 見唐之樂器而造之]”라고 전한다. 가실왕은 6세기 초에 재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5세기 후반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선진 외래 문물이 수용되면서 악과 악기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실왕의 ‘악’에 대한 이해는 『삼국사기』 악지에 “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니 어떻게 하나로 할 수 있겠는가[王以謂諸國方言各異聲音 豈可一哉]”라고 한탄하며 성열현(省熱縣) 사람 우륵에게 명하여 악곡을 짓게 한 배경을 말한 데서 알 수 있다.
지은 악곡은 가야의 지명으로, 가실왕이 ‘악’을 통해서 대가야 지역에 대한 패권 의식을 표현하려 한 의도가 담겨 있다. 당시 각 지역과 관련된 악을 연주하는 것은 바로 그 지역에 대한 관념적인 지배 의식의 표현이었는데, 가실왕은 ‘악’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