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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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谷里-昌寧曺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Single-Clan Village of Changnyeong Jo Clan in Songgog-ri Ssisil Maeul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씨실마을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촌.
[명칭유래]
깊은 골짜기 속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가을에 단풍이 들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골짜기가 아름다워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곡(松谷)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중종 때 담양전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고, 1728년(영조 4년) 경 창녕조씨 태복경공파 정주목사 조정립(曺挺立)의 현손 조성좌(曺聖佐)가 이인좌의 난에 가담해 그의 장자 조명상(曺明相)과 동생 조명협(曺明莢)이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도옥리에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를 거쳐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로 와서 정착하여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씨실마을이 속한 송곡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노동·삼동을 병합하여 송곡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송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인봉산[195.4m], 서쪽으로 덕적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현황]
2007년 현재 60가구가 살고 있다. 대도시 대구와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였거나 왕래한다. 예전에는 100가구 훨씬 넘어 고령군에서 으뜸가는 집성촌이었다.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으로 일찍부터 조생종 참외를 많이 재배하기로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주로 벼농사를 짓는다.
창녕조씨 관련 유적으로는 창녕조씨 태복경공파 송곡문중 후손들이 선조를 위한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친목을 도모하는 종청(宗廳)으로 활용하기 위해 1916년에 창건한 경심재, 조상(曺塽)을 기리기 위해 문하생들이 1938년에 건립한 후송재, 창녕조씨 문중의 효부 해주오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0년에 건립한 해주오씨 숭효각이 있다. 후송재 좌측에는 다산면 송곡리 창녕조씨 집성촌의 입향조 조명상의 아버지 조성좌의 유허비가 있고, 우측에는 유학자인 학산 조을환(學山 曺乙煥)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학산창녕조공추모비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천왕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