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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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后日記 |
영어음역 | Danghuilgi |
영어의미역 | Chronicles of Gim Jongj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환 |
성격 | 사초(史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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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종직 |
저자 | 김종직 |
저술연도/일시 | 1482년 |
권수 | 1권 |
책수 | 1책 |
사용활자 | 필사본 |
가로 | 21.9㎝ |
세로 | 39.1㎝ |
표제 | 畢齋堂後日記 |
소장처 | 김병식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정의]
1482년 고령 출신 문신 김종직(金宗直)이 쓴 일기 형식의 사초(史草).
[개설]
영남 사림파의 종조인 김종직[1431~1492]은 길재(吉再)의 학풍을 계승한 김숙자(金叔滋)의 아들로 1453년(단종 1)에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462년(세조 8)에 승문원박사로 예문관봉교를 겸하였다. 김종직은 성리학 보급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훈구파와 대응하여 영남 사림파들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정계에 등장한 영남 사림파는 성리학 이념의 현실 적용보다는 사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훈구파와 차별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등 훈구파가 초래하고 있는 각종 모순된 상황을 비판하였다. 김종직의 학통은 후에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등으로 이어지며 영남학파의 큰 맥을 이었다.
[편찬/발간 경위]
‘당후일기(當後日記)’란 본래 조선시대 승정원(承政院)의 정7품 주서(注書)가 쓰는 사초(史草)를 칭하는 말이다. 『당후일기(堂後日記)』는 조선시대 성종 연간 당시 형조판서였던 김종직이 어전 회의의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사초의 일종이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선산김씨(善山金氏) 종택 소장본이다.
[형태]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필재당후일기(畢齋堂後日記)’이다. 크기는 가로 21.9㎝, 세로 39.1㎝이며, 총 92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내용]
1482년(성종 13) 11월 1일부터 같은 해 12월 25일까지 기록한 일기로, 44장의 행초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종직은 많은 시집과 문집을 저술하였으나 대부분이 연산군의 분서(焚書)로 소실되었는데, 그 중 『당후일기(當後日記)』만이 남아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