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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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谷里遺蹟 |
영어의미역 | Archaeological Site in Naegok-ri |
이칭/별칭 | 고령 강정리 유물산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67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조영현 |
성격 | 고분/암광돌덧널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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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670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 고분 유적.
[개설]
박곡리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고분 1기는 대가야 동부권에서 최대 규모인 박곡리 고분군과 불과 300m 가량 떨어져 외따로 발견된 것으로, 이 고분은 대가야시대 최고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대가 낙동강을 사이에 둔 신라권역과 관문이자 경계를 이루는 지대이고, 조성 당시 신라와의 긴장 관계에 있었으며, 외따로 조성된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강변 단애부라는 입지와 함께 대가야의 돌덧널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곽의 형태로 굴착한 암광을 사용한 고분이라는 특이점을 보인다.
[위치]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동쪽으로 직선거리로 10.3㎞ 떨어져 있는 박곡마을과 봉화산 사이에 낙동강 서변을 따라 돌출된 좁고 저평한 구릉 단애부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강정리 유물산포지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강 따라 나란하게 돌출된 구릉이 낙동강 변의 높은 자연 제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릉의 동측 단애부에서 고분 한 기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남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당시 대가야의 보루성이 위치한 강정리 봉화산이 있으며, 88올림픽고속도로가 이 고분에서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동서로 지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외관상 고분이 보이지 않던 이 구릉이 밀양박씨 운암공파 종중에서 추진하는 임진왜란전적기념관 건설 부지로 지정되면서 2000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시굴 조사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다른 부분은 이미 과거에 묘를 조성하면서 표토층을 삭토하여 평탄한 암반면이 노출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암반 단애부에서 굴착 흔적이 노출됨으로써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굴착 부분 자체가 대가야 최고 말기 토기들을 부장한 석곽으로 드러났다.
[형태]
구릉 단애부의 청석질 암반 단애면을 길이로 깨어 최소형의 구덩식 돌덧널[수혈식 석곽]의 형태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조사 당시에는 지형이 낮은 강 쪽 부분들은 이미 유실되었다. 정형의 석곽은 벽면이 수직이지만 이 고분은 경사진 암질의 자연 층리 방향에 따라 깨어낸 상태가 되었다. 암광의 벽면은 물론 바닥면도 층리를 따라 약 20° 경사를 이룬다. 따라서 고분의 바닥이 편평하도록 깐 점토층은 경사가 심하여 2단으로 단차가 나 있으며 높은 쪽으로는 얇게, 낮은 쪽으로는 두텁게 되어 있다.
[출토유물]
완형과 파편 상태의 토기 6점이 출토되었다. 작은 긴목항아리, 다수의 횡선이 시문된 항아리 상부편, 꼭지가 없는 뚜껑접시 등이다. 한편, 근래 정지 작업된 구릉의 평탄부에서는 삿무늬 항아리, 뚜껑, 대호, 짧은목항아리, 반구형 토기, 발, 우각형파수(牛角形把手), 작은 완, 박자, 방추, 그물추 등의 대가야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각종 토기편 그리고 조선시대 분청사기편이 수습되었다.
[현황]
발굴 조사 후 원래의 계획에 따라 임진왜란전적기념관이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발굴 조사된 박곡리 유적은 신라권역과 경계부를 이루는 낙동강 단애부에 조성된 암광 형태의 고분으로 대가야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것이다. 고분이 상당 부분 유실되었으나 다행히 유실되지 않은 범위에서 바닥에 깐 점토 위에 부장된 토기들이 남아 있었다. 대가야 최고 말기의 토기 조합 형태는 당시 토기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