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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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敬睦堂 |
영어음역 | Gyeongmokdang |
영어의미역 | Gyeongmokdang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13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선,정규배 |
성격 | 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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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기와집 |
건립시기/일시 | 1541년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1.5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137 |
소유자 | 광산이씨 성주파 종중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 있는 이홍기, 이홍량, 이홍우가 건립한 재실.
[위치]
경목당은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쟁골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고탄(高呑)은 조선 초 하씨가 개척한 마을로 의봉산 남쪽으로 높은 산 여울에 에워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쟁골은 조선 선조 때 광산이씨 문종을 모신 경목당이 있었는데 재실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쟁골이라고 불렀다. 성산IC를 나와 대가야읍 방향으로 200m 정도 가면 우측으로 고탄리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1㎞ 정도 가면 좌측으로 고탄공단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우측에 ‘고탄리[쟁골]’라는 돌로 된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방향으로 100여m를 가면 마을 뒤쪽 산기슭에 경목당이 있다. 좌·우·뒤 삼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의 지형에 위치해 있다.
[변천]
경목당은 광산이씨 삼 처사(三處士)인 용재(容斎)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斎) 이홍우(李弘宇) 삼형제가 문중의 화목과 공경의 의미에서 세운 재실이다. 1541년(중종 36)에 창건하였으나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하였으며, 1972년에 중건기를 작성하고 2007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목당은 광산이씨 삼 처사를 기리기 위해 1847년(헌종 13)에 건립된 사당인 봉양사와 아울러 봉양서원을 이루었다. 그 뒤 봉양사는 1871년 대원군 대의 사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형태]
정면 우측에서 좌측 방향으로 철제 난간을 두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칸짜리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인 정문이 나온다. 경목당의 담장은 현대식 벽돌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왼쪽에 정문보다는 작지만 정문 형태인 맞배지붕의 조그마한 대문이 있다. 경목당은 경내 한 가운데에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목조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각각 방이 있는 구조로 대청은 2칸, 왼쪽 방 2칸과 오른쪽 방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측면의 반 칸은 전면 길이 방향으로 반 칸의 마루를 깔았다.
마당에서 4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섬돌이 있는데, 섬돌 위쪽 추녀 밑에 ‘경목당’이라는 현판이 있고, 대청마루 중앙과 좌우 삼면에는 ‘경목당중건상량문(敬睦堂重建上樑文)’, ‘경목당중건사실기(敬睦堂重建事実記)’, ‘경목당중건기(敬睦堂重建記)’, ‘경목당중수상량문(敬睦堂重修上樑文)’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또 경목당에는 삼형제의 유고집인 문집이 각각 1권씩 보관되어 있다.
[현황]
깨끗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경목당 바로 앞마을의 집들 가운데에 비석 2기가 있는데, 그중에 우측의 비석은 ‘동호이선생유허비(東湖李先生遺虚碑)’로 숭정병자후경진(崇禎丙子後庚辰) 5월에 건립하였으며, 광릉(広陵) 이만운(李万運)이 비문을 짓고, 8세손 이헌영(李憲永)이 글을 썼다고 하였다. 좌측 편의 비석은 숭정병자후무신(崇禎丙子後戊申) 10월에 세웠다고 하였다.
우측의 비석은 이수와 귀부로, 좌측의 비석은 가첨석과 귀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기의 비석 모두가 이수와 가첨석 및 귀부는 오래된 듯 보이나 비신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마을 안쪽에 1847년(헌종 13)에 창건하여 이홍기, 이홍량, 이홍우 3처사를 모신 봉양사(鳳陽祠)라는 사당이 있는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금시구(琴詩逑)가 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