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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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望山熢燧址 |
영어의미역 | Mangsan Beacon Site |
이칭/별칭 | 금산 봉수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산 19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동락 |
성격 | 봉수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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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산 192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개설]
대가야읍 장리기의 망산(望山), 혹은 금산(錦山) 정상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봉수 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에 따르면 “현의 동쪽 7리에 있는데, 서쪽으로는 합천군 야로면의 미숭산(美崇山)과 응하고, 북쪽으로는 성주 가리현[현 고령군 성산면]의 이부로산[현 의봉산]과 응한다”고 한다. 미숭산 봉수와는 42.5㎞, 이부로산 봉수와도 42.5㎞ 정도 떨어져 있었다. 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여지도(輿地圖)』 등을 비롯한 각종 고지도에도 이곳이 망산봉대(望山烽臺)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봉수대에 딸린 봉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변천]
망산 봉수 터가 위치한 망산의 정상부에는 대가야시대의 산성인 망산산성이 위치해 있다. 망산산성은 신라군의 침입을 지켜본다는 의미에서 망산성(望山城), 그들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어라성(御羅城)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로 보아 봉수대가 위치한 망산은 낙동강 방면으로 침입하는 외적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 방어 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의 성벽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들이 쌓았다고 전한다. 따라서 봉수대와 산성은 대가야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치]
망산 봉수가 위치했던 망산은 고령읍 내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망산은 고령읍, 개진면, 성산면의 경계 지점으로 해발 286.4m에 해당하며, 성산면의 봉화산과 운수면의 의봉산, 멀리로는 쌍림면의 의봉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현황]
망산 봉수 터는 직경 11m 정도 되는 원형의 석열이 지표면 위에 3단~5단 정도 남아 있고, 가운데가 움푹하고 그 속에는 소토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 모 통신회사의 통신 철탑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유적이 상당 부분 훼손되었고, 또 산림이 우거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령 지역에는 현재 망산 봉수 터와 함께 의봉산 봉수 터와 봉화산 봉수 터 등 모두 3개소의 봉수대가 있었다. 고령 봉수대의 망은 거제~진해~망산~이부로산~인동~선산~개령~금산~상주~문경~충주를 거쳐 서울의 목멱산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봉수 유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