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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 유허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575
한자 尹奎遺墟碑
영어의미역 Memorial Monument for Yun Gyu
이칭/별칭 윤규 유허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산 17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석
양식 지붕형
관련인물 윤규
재질 화강암
높이 150㎝
너비 38~42㎝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산 178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는 선비 윤규의 유허비.

[개설]

윤규의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는 규(奎)요, 자는 문노(文老)이다. 관향은 파평인으로 고려 시중 문숙공(文粛公) 윤관(尹瓘)의 15세손이다. 조선 선조 때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월오촌에 은거함에 마을 앞에 대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언덕 위에 기암괴석이 심히 아름다워 평생 외루(畏塁)하였다.

[건립경위]

조선시대 선비인 월오(月塢) 윤규는 많은 문생을 교육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문생들과 같이 왜병과 대전하여 용전분투하다가 1593년(선조 26) 전사하였다. 윤규 비는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위치]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 바람골마을에서 회천을 건너 월오리 달오마을 동남쪽 절벽에 있다.

[형태]

윤규 비 옆에 원래 정자가 있었으나 없어진 지 오래다. 근래에 단청을 한 비각이 지어져 보존이 잘되고 있다. 건물 외부는 벽돌을 쌓아 차단하고 그 내부에 다시 홍살을 설치하여 격을 갖추었다. 지붕돌이 비신에 올려져 있고, 기단부도 견고하다. 비의 높이 150㎝, 너비 38~42㎝, 두께 16㎝이다.

[금석문]

비석 정면 상단에 대자(大字) 두 글자씩 세로로 ‘월오윤선생유허비(月塢尹先生遺墟碑)’라 새기고, 그 아래 소자(小字)로 4면에 걸쳐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내용은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 새로 세운 비석은 인주(仁州) 장석영(張錫英)이 찬(撰)하고[1907], 13세손 윤영택(尹永宅)이 글을 쓰고[1992], 대흥(大興) 백순엽(白淳燁)이 번역하였다[1994].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덕산(徳山)[남명(南冥) 조식(曺植)을 이름]이 시를 써서 윤규에게 주었던 글에 이르기를 ‘문노[윤규의 자]는 제일가는 명방(名方)으로 좋은 곳에 집을 지어 유거에 깊었도다. 성품은 천석(泉石)을 탐하여 은거하였고, 일신은 벼슬을 싫어하여 과거에는 나가지 않았도다. 꿈에서나마 찾고 싶어도 길이 아득하고 편지를 부치기 어려워 삼추(三秋)가 지났구나. 명예의 묵은 빛은 지금 다 던졌으니 늙어가는 세월이 머무르지 않는구나.’ 하였으니 대현(大賢)의 한 마디가 일인(一人)을 덮게 하였다.”

[현황]

비각의 내부 바닥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되어 있으며, 윤규 비 우측에 화강석으로 깎아 세운 비석이 함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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