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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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豊世避難石窟 |
영어의미역 | Stone Cave for Seong Pungsae Fleeing from The Wa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산 9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형기 |
성격 | 석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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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1m |
지름 | 장축 2m|단축 1m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산 94 |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성풍세가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석굴.
[개설]
성풍세(成豊世)는 본관이 창녕이며,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냈던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성주 노곡으로 피난 와서 의병에 가담하여 낮에는 나라를 지키는 데 힘쓰고 밤에는 효를 다하는 충과 효를 겸비한 효자라고 전한다.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64년(영조 40) 성만철이 「성효자효행지(成孝子孝行誌)」를 쓴 뒤 1768년(영조 44) 효자비와 각을 세웠으며, 1783년(정조 7) 효행상후발문을 지어서 후세에 전하고 있다.
[위치]
성풍세 피난 석굴은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산94번지 피난골 산중턱에 있다.
[형태]
성풍세 피난 석굴은 석굴이라기보다 삼국시대의 장방형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이다. 장축 2m, 단축 1m, 높이 1m 정도의 석실 위에 뚜껑돌 5매가 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