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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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池山洞四十五號墳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 No. 45 in Jisa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8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조영현 |
성격 |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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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수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
건립시기/연도 | 5세기 말~6세기 초 |
높이 | 2.85m[복원 4m] |
지름 | 장축 23.5m[남북]|단축 22m[남북]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8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79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위치]
지산동 제45호분은 고령 주산성의 서남쪽 주능선에서 고위 수평상 대지에서 비교적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 지점의 산등성이에 위치한다. 이 고분 위쪽으로는 금림왕릉으로 전해지는 지산동 47호분이, 아래로는 55m 떨어져 지산동 44호분이 위치한다. 고령읍내에서 바라보면 지산동 45호분이 대형 분묘인데도 더 높은 산등성이에 대형 분묘 5기가 있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7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가야 문화권의 유적 보존을 위한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결과 대형 봉분의 중앙부에 매장 주체부인 대형 수혈식 석실 1기와 남벽을 공유한 상태로 붙여 부장석실을 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주위에 원호상(圓弧狀)으로 배치한 순장곽 11기가 배치되었다. 이들 유구(遺構)들은 모두 일련의 기획으로 동시에 축조되어 있어 고분 안의 유구의 인물들은 일시에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산동 44호분과 같이 순장곽 속에 순장자가 매장되지 않은 허곽 2기가 있지만, 주석실[1~3명]과 부장석실[1명]에도 각기 순장자가 있어 순장자는 적어도 11명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형태]
매장 주체부인 주석실과 그것보다 길이만 약간 짧은 병렬 상태의 부장석실 1기는 할석으로 축조한 전형적인 대가야식 세장 방형 구덩식 돌방[수혈식 석실]이다. 주변부의 순장곽도 구덩식인데, 석재는 할석 또는 판석으로 만든 두 가지가 있다. 뚜껑돌은 비교적 두꺼워 도굴에 의해 파괴된 것을 제외하면 원상태로 남아 있었고, 윗면은 점질토로 밀봉되었다. 둘레돌은 지형상 낮은 쪽에만 교란 상태로 있었으며, 봉토는 점질토와 사질토를 서로 번갈아 쌓아 단단하게 다졌다.
봉분은 장축[남북] 23.5m, 단축[남북] 22m 규모의 타원형 대형분이며, 잔존 높이는 급경사로 지형이 낮은 호석에서는 8.3m이나 높은 쪽에서는 2m에 불과하다. 그리고 뚜껑돌 상면에서 2.85m이지만 원래 높이는 약 4m로 추정된다. 한편, 주석실의 규모는 길이 7.15m, 너비 1.6m, 깊이 1.85m로 지산동 44호분보다 낮지만 사람이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출토유물]
돌방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신구는 금동제 관형 장식, 청동거울 조각, 금제·금동제·은제 귀걸이, 구슬 목걸이, 금제 장식품 등이다. 무장·무기류는 갑옷 조각, 삼엽문(蔘葉文) 은장 대도, 소도, 창, 화살촉, 표창 등이다. 마구류는 안장테, 등자, 재갈, 행엽(杏葉)[말띠 드리개], 운주, 말띠 이음쇠 등이며 목곽에 사용된 꺾쇠와 덩이쇠도 있다. 토기류는 그릇받침과 짧은목항아리 세트, 굽다리접시, 유대파수부소호(有臺把手附顥小壺), 중경호(中頸壺) 등이다. 부장석실에는 금제 귀걸이, 곡옥 등의 장신구와 무기인 소도가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중경호 등 주로 큰 토기가 출토되었다. 순장곽 중의 토기는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중경호,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유대파수부소호 등 작은 토기류가 주류를 이룬다. 한편, 일부 순장곽에는 금·은·청동제 귀걸이, 팔찌, 금가락지 및 방추 등이 나왔다.
[현황]
발굴 조사한 다음 봉분은 추정 높이만큼 쌓고 잔디를 입힌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고분 가까이 탐방로가 있으며, 발굴 내용의 개요와 고분 번호가 새겨진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산동 45호분은 동시에 발굴된 지산동 44호분과 함께 우리나라 고대의 순장을 실증하였고, 순장자는 적어도 11명이 넘어 지산동 44호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리고 순장자의 직능 혹은 역할의 의미를 지닌 순장곽의 배열 상태 및 부장 유물은 순장자 신분을 밝히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