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492 |
---|---|
한자 | 池山洞四十四號墳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 No. 44 in Jisa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8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조영현 |
성격 | 고분 |
---|---|
양식 | 수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
건립시기/연도 | 5세기 3/4분기 |
높이 | 3.6m |
지름 | 장축 27m[동서]|단축 25m[남북]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8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79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위치]
지산동 44호분은 고령 주산성의 서남쪽 주능선이 완만한 대지를 이루는 지점에서 서쪽의 너른 비탈면을 이루는 부분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중턱 대지의 지산동 제32~제35호분보다 위쪽이고 지산동 제45호분보다 아래쪽에 해당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7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가야 문화권의 유적 보존을 위한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결과 거대한 봉분 속에는 대형 구덩식 돌방 1기와 남측과 서측에 부장 돌방 2기 및 그 주위에 방사상 및 원주상으로 배치된 순장곽 32기가 들어 있었다. 이 유구들은 모두 일련의 기획에 따라 동시에 축조되어 있어 고분 안의 인물들이 일시에 매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순장곽 속에 순장자가 매장되지 않은 허곽 2기가 있지만, 4기는 2명을 매장하였다. 또 주석실과 부장석실에도 각기 순장자가 있어 순장자의 수는 적어도 37명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형태]
중앙부에 매장 주체부인 주석실과 그것보다 작게 만든 부장실 2기[남석실과 서석실]는 할석으로 축조한 전형적인 대가야식의 세장 방형 구덩식 돌방이다. 주변부의 순장곽도 구덩식인데, 석재는 할석 또는 판석으로 만든 두 가지가 있다. 뚜껑돌은 도굴에 의해 파괴된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두꺼워 원상태로 남아 있고, 윗면은 점질토로 밀봉된 상태이다. 둘레돌은 지형이 높은 곳은 3단, 중간은 2단, 낮은 곳은 1단으로 축조되어 있다. 봉토는 최근의 연구에 의해 구획 축조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봉분은 장축[동서] 27m, 단축[남북] 25m 규모의 타원형 대형 분묘이며, 잔존 높이는 뚜껑돌 윗면에서 3.6m이지만 지형이 낮은 호석에서는 6m이다. 이러한 높이는 원래보다 1m가량 낮아진 상태로 추정된다. 주석실의 규모는 길이 9.5m, 너비 1.75m, 깊이 2.1m로 사람이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출토유물]
돌방 출토 유물 중 장신구는 각종 구슬이고 생활용구는 청동합, 야광패 국자, 등잔, 휴대용 숫돌 등이다. 무장·무기류는 투구, 대도, 창, 도끼 등이다. 마구류는 안장 부속, 검신형 행엽(杏葉)[말 띠 드리개], 재갈 멈추개, 띠 장식과 운주, 교구 등이다. 그 밖에 각종 토기류와 꺾쇠 및 쇠못이 출토되었다. 부장실 출토 유물은 거의 토기류만 남아 있었다. 순장곽에서는 작은 토기류가 주류이지만 일부 순장곽에서는 무기류, 마구류, 금·은·청동제 귀걸이 및 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일부 토기 안에서 닭뼈와 누치[잉어과]뼈가 나왔다.
[현황]
복원 정비를 위한 기획 조사이므로 발굴 조사한 다음에 봉분은 추정 높이만큼 쌓고 잔디를 입힌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고분 가까이 탐방로가 있으며, 발굴 내용의 개요와 고분 번호가 새겨진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또한 대가야박물관의 서쪽에 고분의 실물 크기로 내부 상태를 보여 주는 원형 덮개로 된 전시관이 개설되어 있어 방문객이 쉽게 관람할 수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산동 44호분은 문헌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던 우리나라 고대의 순장을 실증한 고분으로, 대형 구덩식 돌방 3기 및 그 주위에 순장곽 32기가 배치되어 있고 순장자도 37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순장묘이다. 그리고 순장자의 직능 혹은 역할을 보여 주는 순장곽의 배열 상태는 순장 자체는 물론, 당시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중요 자료가 된다. 특히 출토된 국자는 일본 오키나와산 야광패로 만든 것이었고, 등잔과 금동합은 백제에서 생산되었다고 추정되는 것으로 대가야의 원격지 교역을 보여주는 근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