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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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加耶古墳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 of Daegay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신종환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가야시대의 무덤.
[개설]
고분은 고대인들의 분묘 유적으로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고령 지역에는 대가야의 도읍지라는 사실에 걸맞게 40여 개소에 가까운 대가야시대 고분군들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도성이 위치했던 대가야읍의 배후에는 사적 제79호로 지정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대가야 고분은 대가야의 지배 세력들이 묻힌 고분군으로서 그 수와 분포 범위로 볼 때 삼국시대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대가야의 왕과 왕족을 비롯해 지배층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무덤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내용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을 비롯하여 대가야읍 본관리 고분군, 성산면 박곡리 고분군 등 봉토의 규모가 큰 고분군들도 다수 분포하고 있지만 거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밖에 고령의 대가야 고분으로는 고아2리 고분, 쾌빈리 고분군, 고아리 고분군, 장기리 고분군, 연조리 고분군, 중화리 고분군, 예리 고분군, 백리 고분군, 후암리 고분군, 대평리 고분군, 화암리 고분군, 월산리 고분군, 개포리 고분군, 양전리 고분군, 반운리 고분군, 도진리 고분군, 기산리 고분군, 노곡리 고분군, 귀원리 고분군, 송림리 고분군, 하거리 고분군, 산주리 고분군, 신곡리 고분군, 안림리 고분군, 고곡리 고분군, 용리 고분군 등이 있다.
한편, 대가야식 고분은 경남 합천, 거창, 산청, 의령 등을 비롯하여 전북 남원, 전남 순천 등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는 학술 조사가 일부 이루어진 대표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본관리 고분군, 고아리 벽화고분, 쾌빈리 고분군 등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고령의 진산(鎭山)인 해발고도 321m의 주산(主山) 남쪽으로 발달한 능선과 읍내 쪽으로 발달한 가지 능선들에 분포한다. 대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으로, 주로 수혈식(竪穴式) 석곽묘가 주 묘제이며, 대가야의 왕을 비롯한 통치자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 약 400여 기의 봉토분이 남아 있는데, 주산성의 하단에 접하여 직경 20m 이상의 대형분이 분포하고, 능선 중간부에는 직경 10~15m의 중형분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봉분이 없는 소형 석곽분은 능선의 높이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평지에 가까운 능선 하단부에도 대형분이 일부 있다.
1. 발굴 조사 경위 및 내용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부터 조선총독부고적조사회에 의해 몇 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발굴 조사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물이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그 보고서 또한 자세히 전해 오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고령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발굴 조사는 1977년의 대가야 고분군 정화사업에 따른 지산동 44호분과 지산동 45호분 조사였다.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 봉토의 규모가 가장 큰 것에 속하는 이들 무덤 중 44호에서는 32기나 되는 순장 석곽이 확인되었고, 45호 무덤에서는 11기의 순장 석곽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또한 화려하면서도 풍부하여 대가야의 왕릉으로 추정되었는데, 대규모 순장묘(殉葬墓)라는 새로운 고분 연구 자료가 확인됨으로써 본격적인 대가야 고분 발굴 조사의 기폭제가 되었다.
대가야 고분 중 이와 같이 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큰 고분의 경우, 가운데에 주인공이 묻히는 수혈식 석실(石室)을 두고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순장 곽을 만들어 순장자(殉葬者)를 함께 묻은 다음 하나의 거대한 봉분을 쌓아 덮었다. 이처럼 하나의 봉토 속에 주인공과 순장자를 별도의 매장 공간을 마련하여 묻은 것은 대가야 장송(葬送) 의례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어 1978년에 다시 지산동 32호분과 지산동 35호분에 이어 주변의 석곽묘들이 발굴되어 중형의 봉토분에서도 순장묘가 재확인되었고, 32호분에서 대가야식 금동관(金銅冠)과 철판 갑옷 및 투구가 출토되어 대가야 고분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또한 1994~1995년 사이에는 대가야왕릉전시관의 건립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있었고, 1999년에는 대가야역사관 건립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지산동 고분군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2007년 5월 25일부터 대가야박물관 옆에 있는 대형 봉토분인 지산동 73호분과 지산동 75호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봉분의 밑지름이 30m 정도에 높이가 2~4m에 달하는 큰 규모의 이 고분들은 각각 나지막한 능선의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봉분의 외형적 규모와 입지 등에서 볼 때 대가야의 최고위 지배자인 왕릉으로 추정되었다.
이 조사에서는 기왕의 지산동 고분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우선 봉토에 대한 세밀한 조사를 통해 이른바 구획(區劃) 성토(盛土)와 토제상기법(土堤狀技法)이 구사된 봉분 조성이 밝혀졌으며,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매장 주체부가 수혈식 석실이 아니라 주곽과 부곽이 따로 마련된 구조의 목곽묘라는 점이었다.
2. 묘제(墓制)와 출토 유물
대체로 5~6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산동 고분의 주 묘제는 수혈식 석곽과 수혈식 석실분이며, 이밖에도 횡혈식 석실분도 간혹 있고, 초기의 것에서는 목곽 구조도 확인되었다. 석곽분은 할석(割石) 또는 판석(判石)으로 축조되었으며, 대형인 석실분은 모두 할석으로 축조되었다.
봉토는 석곽이나 석실의 장축 방향으로 약간 긴 타원형을 이루되 석곽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석(護石)을 갖추고 있다. 평면 형태는 대개 너비에 비해 길이를 5배 이상 길게 쌓은 장방형이며, 단면 형태는 양쪽 장벽이 약간 내경 하는 사다리꼴의 형태가 많다.
[고령 본관리 고분군]
대가야읍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3km 정도 떨어진 본관리 관동마을 뒷산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해발 약 240m의 정상부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정상부와 북편으로 내리는 지맥 능선 및 사면에 크고 작은 고분 수백기가 확인된다. 직경 20m 정도의 대형분을 비롯하여 비교적 규모가 큰 중형분들은 대부분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제34, 35, 36호분은 1983년 계명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이들 고분은 모두 석축의 주곽과 부곽을 갖춘 수혈식 다곽분이며 지산동 고분군의 조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순장묘제로 밝혀졌다.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
가야시대 유일의 벽화 고분인 이 고분은 1963년 도굴된 상태로 처음 발견되었다. 무덤방에 해당하는 현실과, 현실로 통하는 출입 통로인 연도를 갖춘 이른바 횡혈식 석실분으로서 벽과 천정을 점토와 회로 미장한 다음 그 위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의 상당 범위가 탈락된 상태이지만 다행히 연도와 현실 천정에 적색, 녹색, 갈색의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연꽃무늬가 13개 정도 남아 있다. 현실은 양쪽 벽이 차츰 안으로 좁아들어 천정을 이루는 터널형 구조이며, 바닥에 관을 놓을 수 있는 관대가 2개 나란히 마련되어 있다. 1984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정밀 실측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고령 쾌빈리 고분군]
대가야읍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거리에 있는 쾌빈리 정방마을 뒷산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서 고령 본관리 고분군과 약 1.5km 떨어져 있으나 같은 산의 능선에 해당한다. 직경이 10-15m 정도인 봉토분 30여 기를 비롯하여 주변에 다수의 석곽묘가 분포하고 있다.
1995년 고분군이 분포하는 능선 말단부에 아파트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일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고령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목곽묘 3기가 조사되었다. 조사된 목곽묘는 폭이 3m가 넘는 대형이며,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지산동 고분군보다 이른 5세기 초에 조성된 고분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10기의 석곽묘도 조사되었는데 이들은 지산동 고분군이나 본관동 고분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고 긴 석곽으로서 전형적인 대가야식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출토 유물의 특징]
지산동 고분을 비롯한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른바 대가야 양식 토기라고 불리는 토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몸통이 얕은 접시에 작은 긴네모꼴의 투창을 상하 일렬로 배치한 굽다리접시[고배(高杯)]와 곡선으로 처리된 잘록한 목과 둥근 몸통의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를 들 수 있다. 특히 목항아리의 목에는 아주 정교하고 치밀한 물결무늬가 여러 겹으로 시문되어 있다. 그리고 장신구에 있어 속이 빈 구슬 장식을 아래 위 사슬로 엮어 늘어뜨린 귀걸이는 대가야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