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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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坪里- |
영어의미역 | Dolmen in Bongpyeong-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598-1 일원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류영철 |
성격 | 고분|고인돌|돌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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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중기 |
높이 | 235㎝[덮개돌] |
너비 | 148㎝[덮개돌]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598-1 일원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위치]
봉평리 고인돌은 대가야읍에서 성주 방면으로 난 국도 33호선을 따라 가다가 지방도 907호선으로 1.5㎞ 정도 지나면 봉평리에 있는 운수면사무소가 나오는데, 운수면사무소 뒤편 봉평초등학교 어귀 한다리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 도로 정비 사업으로 발굴 조사를 한 후 덮개돌은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옮겨 놓았다. 이 지역에는 근래까지 1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1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지 정리를 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9년 농로(農路)를 개설하면서 대흥리 유적과 함께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1기의 덮개돌과 덮개돌 주변의 땅속에서 4기의 석관묘, 장방형의 유구(遺構) 및 구(溝), 석열(石列) 등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조사에서는 덮개돌과 석관(石棺)의 관계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아 덮개돌이 후대에 이동하였을 가능성도 지적되며, 받침돌의 유무도 확인되지 않았다. 매장 주체부가 판석조의 ‘ㅍ’자 형태의 석관으로서 바닥석이 깔린 상태였으며, 일단병식(一段炳式) 돌검과 촉신이 긴 돌살촉 등 출토 유물의 형태로 보아 유적의 편년은 청동기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형태]
봉령리 고인돌은 발굴 조사 전부터 이미 덮개돌이 둘로 갈라져 틈이 벌어져 있었는데, 훼손되지 않는 덮개돌의 북면에는 지름 10㎝ 정도의 성혈(姓穴)[바위구멍] 1개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165㎝, 너비 148㎝, 높이 235㎝ 정도이다.
[출토유물]
출토 유물로는 돌널무덤에서 돌검 2점, 돌살촉 17점을 비롯하여 다량의 석기 조각과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현재 이 유물들은 대가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현황]
봉평리 고인돌은 발굴 조사 후 덮개돌은 봉평초등학교 앞의 도로변으로 옮겨 놓았다. 고령군에서 고인돌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하고 안내 간판을 세워 놓았다.
[의의와 평가]
고령 지역에서 현재까지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고인돌은 봉평리 고인돌과 성산면의 대흥리 유적이 있다. 특히, 봉평리에는 봉평리 고인돌과 함께 인근의 봉평리 석기 제작장 유적, 봉평리 암각화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운수면 봉평리를 비롯한 대가천 일대에는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