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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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靈勞動夜學 |
영어의미역 | Goryeong Worker's Nigh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설립된 교육 기관.
[개설]
노동야학은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으로 야간에 운영되는 정규적 교육 기관인 야간학교와는 구별된다. 1907년 마산민의소가 설립한 마산노동야학이 시초이며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달하였다. 주로 일제강점기 공립보통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노동자·농민·도시 빈민들을 위해 설립되어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192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설립 주체는 지방 유지를 비롯하여 종교 운동·여성 운동·청년 운동·농민 운동·노동 운동·형평 운동을 주도하던 단체들이었으며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어 봉건 제도의 폐습과 문맹 타파 및 민족의식 고양에 크게 기여하였다.
[변천]
1920년 11월 1일 고령청년회가 설립한 고령노동야학이 시초이며 1933년의 경우 고령군 9개면에 공립보통학교는 4개가 있었으나 노동야학은 10개가 있었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점차 줄어들다가 전시 체제로의 돌입과 더불어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소멸하고 말았다.
[활동사항]
고령청년회가 1920년 11월 1일 학령 아동의 구제와 문맹 퇴치를 위해 고령보통학교 부설 노동야학과 부설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고령노동야학의 교과목은 한글·한문·일어·산술 등이었고, 교사는 이상봉·이정근·유우식 등 청년 회원을 비롯하여 공립보통학교 교사 김명덕(金明德)·노정용(盧靜容) 등이었다.
1922년 9월 11일 고령청년회가 고령노동야학의 회관을 신축했으며, 1924년에는 노동야학부를 설치하여 고령노동친목회 회원 100여 명을 입학시켜 공부하도록 하였다. 지식 보급을 위한 강습소의 노력에 일본인 경찰서장 요시무라[吉村登]가 강습소 신축을 위한 의연금 모집에 동참하였고, 주민들과 각종 단체 등도 야학이나 강습소의 설립·운영에 적극 동참하였다.
이와 더불어 우곡면 객기동교회 장로 홍재우·구성서(具聖書) 등이 야학강습소를 설립하였고, 고령면내 기독교회의 가정부인을 대상으로 한 여자야학도 설립되어 운영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도진흥회 고령지부가 각 면 단위로 학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외 중화노동학원[1920]·대평노동학원[1928]·운산노동야학[1929]·안림노동학원 등이 설립되었으며 1932년 1월 고령청년동맹 회원 배수동·배호영·배병희가 덕곡면에서 반성동학관(盤城洞學館)·용흥동학관(龍興同學館)·옥동학관(玉洞學館) 등의 야학을 설립하여 남녀 학생 50~60명에게 무료 교육을 실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노동자·농민을 대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민중 계몽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특히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여성들의 문맹 타파에 앞장서면서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 그리고 여성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