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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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屯德大捷 |
영어의미역 | Dundeok Vic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중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호동 |
성격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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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597년 8월 7일 |
종결연도/일시 | 1597년 8월 8일 |
발생(시작)장소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중화리 |
관련인물/단체 | 정기룡 |
[정의]
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역사적 배경]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에 고령 방면에도 나타났다. 왜군이 고령으로 진출하자 금오산성을 지키고 있던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을 받아 기병 150명과 보병 800명을 거느리고 고령에 와서 왜적과 전투를 벌였다.
[경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선봉장으로 한 다이라 스키마스[平調益]가 이끄는 왜군 1,000명이 1597년 8월 초순, 고령 서남방 둔덕(屯德)[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주둔하여 가교를 설치하고 요새지를 구축하는 등 왜군의 북상을 용이하게 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령에 도착한 정기룡 장군은 먼저 적장 다이라를 생포하여 왜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병을 협곡으로 유도하여 전멸시키는 전법을 세워 8월 7일 밤에 날쌘 병사 10여 명을 이끌고 적진에 접근해 다이라를 생포하여 돌아왔다. 그때 다이라의 이름으로 쓴 편지를 남겼는데, “조선 군진으로 나아가 화친 담판을 하려고 한다”라면서 “내일 아침 조선 군진에서 흰색 깃발이 오르면 내가 무사한 것으로 알고, 붉은색 깃발이 오르면 내가 죽은 것으로 판단하여 군사를 돌려라. 그리고 파란색 깃발이 오르면 화친이 순조롭게 진행되나, 명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천변 서쪽으로 잠시 군사를 숨겨라”라고 적혀 있었다.
[결과]
8월 8일 조선 군진에서 파란색 깃발이 올라가고 그 아래 다이라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본 왜군은 명나라 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천변 서쪽에 있는 협곡으로 들어갔는데, 사방 언덕에서 쏘아대는 화살에 거의 전멸하였다. 이 싸움이 ‘둔덕대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