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60 |
---|---|
한자 | 沿江戰鬪 |
영어의미역 | Yeongang Batt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호동 |
성격 | 전투 |
---|---|
발생(시작)연도/일시 | 1592년 4월 말~5월 초 |
발생(시작)장소 | 경상북도 고령군 |
관련인물/단체 | 김면(金沔)|송이장(宋以張) |
[정의]
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개설]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발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僮)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준비하였다. 4월 말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뒤 5월 10일경 정인홍과 지금의 합천군 가야면 숭산리에서 회동하여 의병을 일으키기로 논의하였다. 5월 19일 김면은 곧 가동을 거느리고 문위의 거주지인 거창 가조로 가서 문위, 윤경남 등과 만나 기병 유사를 정하고 각지로 통문을 보내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경과]
연강전투는 1592년 4월 말과 5월 초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김면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동강 안쪽의 한 지점인 것으로 추측한다. 이 시기 왜군이 낙동강을 주 교통로로 이용하면서 자주 출몰하자, 김면이 가동들을 중심으로 왜군과 접전을 벌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수하 무사 송이장(宋以張)이 분투하였고, 김면은 말 위에서 활을 쏘다 왜군의 총에 맞았지만 다행히 갓에 맞아 부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전투를 계기로 고령이 소현(小縣)인 탓에 적을 방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거창으로 진(陣)을 옮기기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과]
김면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이미 성주와 지례에 들어와 분탕질하면서 거창의 북쪽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전투 이후 김면은 거창으로 나아가 거창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