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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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영어의미역 | Road Syste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있던 역과 원.
[개설]
역원(驛院)에서의 역(驛)은 군사적 의미가 매우 크고 관에서 설치·운영하여 교통을 지원하는 행정 기관의 역할을 한 반면, 원(院)은 민간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로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였다. 역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 각지에 두었다. 중앙과 지방간에 공문 전달, 관리의 사행 및 운수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역제에 따르면 행정 구역의 도(道)와는 다른 역도(驛道)를 설정하고 있는데, 교통로를 중심으로 지역을 나누어 묶은 것이다. 각 역도에는 수개 내지 수십 개의 역을 소속시켜 종9품의 역승(驛丞)이 관장하는 도를 역승도, 종6품의 찰방(察訪)이 관장하는 도를 찰방도라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전국에 찰방 24개, 역승 17개로서 41개 역도에 554개의 속역이 분속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령의 역]
고령에는 찰방도인 김천도에 속하는 안림역(安林驛)과 무계역(茂溪驛)의 두 개 역이 확인된다. 무계역은 1906년 성주에서 편입된 것이다. 교통로는 안림역에서 안원역과 성주를 거쳐 상주, 고령, 충주 등지를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림역은 대마(大馬) 2필, 중마 2필, 복마(卜馬) 16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 마필의 사육을 위하여 마전(馬田)이 지급되었다. 역장 외에 역리 22명과 역노 6명이 배치되었다.
[고령의 원]
원은 관(館)과 더불어 공사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로 각 요로에 설치되었다. 원은 사원의 원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와서 하나의 교통 기관으로 제도화되어 공사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원은 15세기부터 수령의 책임 아래 운영되어, 원우(院宇)의 수축·원주의 선임·원전의 지급 등을 책임졌다. 고령에는 안성원(安性院), 백규원(白圭院), 구생원(救生院), 이탁원(李托院), 수거비원(愁居非院), 양전원(量田院), 옥산원(玉山院) 등 7개의 원과 1906년 성주에서 편입된 무계원, 흑수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