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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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耶新羅結婚同盟 |
영어의미역 | Gaya-Shilla Marriage Allian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조약과 회담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522년 대가야 이뇌왕(異腦王)이 신라 법흥왕에게 구혼을 청하여 맺은 대가야와 신라 사이의 결혼동맹.
[개설]
6세기 들어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신라와 백제의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 신라는 종래의 왕호(王號)인 마립간을 ‘왕(王)’으로 바꾸고 국호를 확정한 후, 대외적인 팽창을 재개하고 법흥왕 대에 율령 반포와 공복을 제정하는 등 완전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백제는 고구려군에게 개로왕이 전사한 이후 실추된 왕권을 동성왕[479~501] 대에 만회하면서 정국이 안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가야에 대해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여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대가야는 522년(법흥왕 9) 3월에 청혼을 하는데, 이때 대가야의 왕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듯 이뇌왕이다. 이뇌왕과 부인 사이에서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월광태자(月光太子)가 태어났다.
[역사적 배경]
대가야는 동성왕과 무령왕 대에 백제가 자국 영역으로 진출하자, 결혼을 통해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체결경위]
522년 대가야 이뇌왕이 사신을 보내어 청혼을 하였고, 신라에서는 이찬(伊飡)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대가야에 보내 결혼이 성사되면서 결혼동맹이 맺어졌다.
[결과]
대가야가 신라에 청혼하여 결혼동맹을 맺고, 그 뒤로 낙동강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던 신라는 의관제(衣冠制)를 빌미로 동맹을 파기하고 급기야 대구에서 창녕에 걸친 지역에 위치한 대가야 세 개의 성과 북경(北境) 다섯 개의 성을 복속시켰다.
[의의와 평가]
백제의 낙동강 유역 재진출 의도로 존립에 위협을 느낀 대가야는 신라에 접근하여 결혼동맹을 맺었다. 그렇지만 신라는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의도로 결혼동맹을 맺었다. 의관제를 빌미로 신라가 가야의 낙동강 유역 8개의 성을 빼앗은 것으로 신라의 의도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