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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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加耶郡 |
영어음역 | Daegaya-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류영철 |
[정의]
562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개설]
대가야군(大加耶郡)은 대가야(大加耶)가 신라에 멸망한 562년(진흥왕 23)부터 757년(경덕왕 16)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치소는 대가야읍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정경위 및 목적]
신라 진흥왕은 562년 대가야를 멸망시킨 후 나라 이름을 그대로 군의 명칭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대가야라는 칭호 자체가 가야 가운데서 가장 큰 가야라는 미칭(美稱)이므로 신라에서 그대로 용인했을지 의문이라거나, 반대로 신라가 대가야를 정벌했다는 우월감의 표시인 동시에 대가야에 대한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대가야군이 미칭인지 아니면 낮추어 부른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나라 이름을 군명으로 삼은 것은 사례가 드문 경우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기록]
대가야군의 지명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 강주 고령군조이며, 이후 편찬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나 읍지 등의 자료는 대부분 『삼국사기』「지리지」를 따르고 있다.
[변천]
고령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였다. 이후 청동기시대를 거쳐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소국인 반로국(半路國)이 있었다. 반로국의 중심지는 오늘날 개진면 양전리·반운리 일대로 추정된다. 4세기 이후 중심지를 오늘날 대가야읍으로 옮기면서 대가야로 발전하여 고령 지역이 대가야의 도읍이 되었다. 대가야의 최고 지배층이 축조한 무덤인 지산동 고분군이 대가야읍에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대가야라는 명칭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대가야가 가야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5세기 이후에 ‘가장 큰 가야’라는 의미의 대가야로 불렸을 법하다.
대가야는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경상남도와 전라도 일원까지 진출하였으나 562년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대가야를 멸망시킨 진흥왕은 대가야의 중심 지역에 대가야군을 설치하고 예하에 적화촌[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가야면 일원, 고령군 쌍림면 일부]과 가시혜성[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개진면 일원]을 두었다. 대가야의 직접 지배 영역이었던 오늘날 고령군 성산면 일원과 합천군 봉산면 지역은 대가야군에서 분리하여 각각 일리군(一利郡)과 대야주(大耶州) 또는 대야군의 영역으로 편제하였다. 이로써 고령 지역은 일국의 왕도에서 신라의 일개 지방 행정단위로 추락하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신라에 끝까지 저항했던 대가야의 지배층을 포함한 유민들은 전쟁 노비가 되거나 강원도 동해나 충청도 충주 지역으로 강제로 사민(徙民)되기도 하였고, 일부 신라에 협조한 인물들은 대가야군 통치에 참여하였다. 지방관으로는 대가야군에 당주(幢主)[후의 군 태수]를, 적화촌과 가시혜성에는 도사(道使)를 파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대가야군의 상위 행정구역은 하주(下州)였다. 이후 대가야군은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 격심한 642년에서 644년까지 2년 남짓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기도 하였으나 644년 김유신(金庾信)의 활약으로 다시 신라의 판도로 귀속되었다.
685년(신문왕 5) 신라의 9주 5소경 체제가 정착되면서 대가야군과 그에 영속된 적화현, 가시혜현으로 재편되었다. 이때 지방관으로는 대가야군에는 군 태수가, 적화현과 가시혜현에는 현령이 파견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관 아래에는 읍사(邑司)가 구성되어 고령 지역의 재지 유력자가 촌주(村主)로 임명되어 통치 업무를 보좌하였다. 대가야군의 상위 행정구역도 하주에서 665년(문무왕 5) 거열주(居列州)[지금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로 바뀌었다가 685년 청주(菁州)[지금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로 바뀌었다.
757년 경덕왕이 왕권과 중앙 집권 체제 강화를 위해 군현 이름을 세련된 한문식으로 고치어 대가야군은 고령군, 적화현은 야로현, 가시혜현은 신복현으로, 상위 행정구역인 청주는 강주(康州)로 개칭되었다. 이로써 대가야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대신 고령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고령이라는 명칭은 읍격의 승강은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경덕왕 대의 군현 이름 개정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의의와 평가]
대가야군이라는 지명은 562년에서 757년까지 약 195년간 고령 지역의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고령이라는 지명이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대가야라는 이름은 여전히 이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