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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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영어의미역 | Iron Age |
이칭/별칭 | 초기 철기시대,청동기시대 말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신종환 |
[정의]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의 고령의 역사.
[개설]
철기시대는 철기 문화가 시작된 초기 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문화에 대한 역사를 말한다. 청동기시대가 진보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B.C. 3세기경에 이르면 중국의 연(燕)나라로부터 한반도로 철기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구의 소재로서 철이 등장하면서 가야 지역은 물론 한반도 전역이 차츰 새로운 문화적 변화를 맞게 된다. 더 이상 고인돌이 축조되지 않고, 대신에 목관묘(木棺墓)가 유행하게 된다. 또 회색 토기가 등장하며 철기 사용이 점차 보편화되어 가는 이른바 원삼국시대[삼한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B.C. 1세기경에서 시작하여 A.D. 3세기경에 이르는 시기인 원삼국시대의 문화는 청동기의 소멸과 철기의 보편화를 특징으로 한다. 철제 농구와 우경에 의한 농경이 발전하게 되는 시기로서, 생산 시설의 진보적 변화를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진다. 그리고 생산과 유통이 활발해져 철의 생산과 이를 매개로 한 무역을 통해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국들의 출현과 그들 간의 긴장과 견제 관계 형성은 철제 무기를 양산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초기 철기시대의 고령]
청동기시대 말에 해당하는 B.C. 4세기경에 이르면 요령식 동검 문화와 북방 및 중원의 청동기 문화가 결합된 우리나라 특유의 한국식 동검 문화가 성립되어 이전 시기보다 더욱 다양한 청동기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이어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인 B.C. 3세기경 연나라의 철기 문화가 들어옴으로써 초기 철기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단조(鍛造)와 주조(鑄造)가 가능한 철기의 유입은 목관묘와 돌무지널무덤[적석목관묘]이 유행하면서 무덤에 부장되기 시작하였고, B.C. 1세기 무렵부터 중국 한나라의 영향으로 철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거의 모든 도구들이 철기로 제작되었다.
토기에서도 재래식 민무늬토기에 변화가 생겨 두형 토기 등 고배형이 생기고 흑도장경호와 점토대토기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은 사회 분화를 더욱 촉진하였고, 정치적인 통합을 촉진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고령 지역의 유적은 대가야읍 본관리 옥산마을 유적과 금산재 능선에 분포하는 양전동 유물산포지 등이 있다.
[원삼국시대의 고령]
원삼국시대가 되면 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유입되어 토기에도 종래와 다른 이른바 와질 토기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와질 토기란 재래의 무문 토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제도술이 접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태토가 아주 정선되고, 이전보다 온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밀폐요인 평요(平窯)와 등요(登窯)에서 소성된다. 그리고 철제 무기가 발달하면서 계급 분화가 촉진되고, 지배층의 권력 독점과 소지역 간의 지역적 통합과 재편을 초래하여 정치적 성장이 가속화된다.
또한 지배층의 무덤도 목관묘보다 점차 규모가 대형화되고, 철기를 비롯한 부장품이 한층 풍부해진 목곽묘(木槨墓)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고령 지역에 존재한 소국은 반로국(半路國) 또는 반파국(伴跛國)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점차 성장하여 대가야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원삼국시대의 무덤으로는 개진면 반운리 유적이 알려져 있고, 좀 더 늦은 단계의 목곽묘는 대가야읍 쾌빈리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또 대가야읍 장기리 솟질마을과 쌍림면 송림리·산당리 일대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유물들이 채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