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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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谷址 |
영어음역 | Gugoknaruteo |
영어의미역 | Gugok Ferry |
이칭/별칭 | 왜나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
집필자 | 황상일 |
성격 | 나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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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구곡리(九谷里)는 본래 고령군의 지역으로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게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전방골, 골이 깊은 올방골 등의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구실’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구실’ 또는 ‘구곡’을 따서 구곡면(九谷面)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동(鳳洞)을 병합하여 구곡동(九谷洞)이라 하여 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里)’로 바뀌면서 구곡리가 되었다.
구곡나루터의 명칭은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구곡나루를 이용하여 건너갔기 때문에 왜나루라고도 부른다.
[변천]
왜나루라는 구곡나루의 옛 지명으로 볼 때 구곡나루터는 조선시대까지 인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의 결절지였다. 구곡 지역 일대에 분포하는 토양이 기와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에 구곡나루를 이용하여 전국 사찰 및 문화재 보수용 기와를 제조하는 공장에 공급되기도 하였다. 1905년(고종 42) 경부선 철도 개통 후 대구, 창녕, 부산 등으로 이동하던 물산과 사람들이 편리한 육상 교통으로 집중되면서 구곡나루는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위치]
구곡나루터는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구곡마을 앞 낙동강이 곡류하면서 지나는 곳에 자리한다.
[현황]
2010년 현재 구곡나루터는 산업화와 육상 교통의 발달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개진면 구곡리에 그 명칭만이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