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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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Osilnaruteo |
영어의미역 | Osil Fer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
집필자 | 황상일 |
성격 | 나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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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는 오곡(午谷), 신곡(新谷), 뱃가라 부르는 3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 오곡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심산유곡에서 학이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이때 이 마을에 오전에만 햇빛이 들었기 때문에 오실, 오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변천]
고령 지역은 낙동강 중류의 우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토양이 비옥하여 물산이 풍부하고 낙동강을 이용한 수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널리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관물과 공물을 수송하였는데, 고령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대구와는 낙동강에 의해 교역이 제한되었다. 따라서 고령 관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인근 경상도 지역의 대소비지인 대구로 이동하여 팔기 위해서 나루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근대적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사이에 나룻배가 왕래하면서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하였는데, 오실나루터는 오곡마을에 나룻배를 정박시키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그러나 1905년(고종 42) 경부선 철도 개통 이후 육상 교통이 발전하면서 나루터의 기능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주로 오실나루를 이용해 대구로 이동하던 물산과 사람들이 도로와 교량과 같은 육상 교통을 이용하면서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후 명맥이나마 유지되던 오실나루는 낙동강을 연결하는 고령교, 성산대교, 박석진교가 개통됨으로써 나루의 기능을 점차 잃게 되었다.
[현황]
2010년 현재 오실나루터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인근에 논공공단이 개발되면서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고 물길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오곡에서 낙동강을 건너 달성군 논공으로 건너가는 뱃길이었다는 명칭으로만 기억될 뿐이며, 오실나루터가 있던 곳 위쪽에는 오곡사슴농장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