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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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交通 |
영어음역 | Gyotong |
영어의미역 | Transportati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진원형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변천]
1. 조선시대
고령은 예로부터 대구에서 현 경상남도 합천군과 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 등의 지역을 연결해 주는 육상 교통의 중간 요충 지대였다. 대구와 고령 간의 물자 이동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여 두 지역 간의 교통로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수운을 통해 부산 방면의 물자와 사람의 왕래도 빈번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14세기 말 조선 성종 때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령은 여러 갈래로 난 큰길가에 있어서 수레와 말발굽소리가 끊일 사이가 없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과거부터 육상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는 한양으로 가는 대로 상에 안림역[현 쌍림면]과 무계역[현 성산면]이 있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게다가 낙동강의 수로까지 이용하였으니 그 때의 교통이 얼마나 편리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2. 근대
1921년 대구와 고령 사이의 국도가 개설되면서부터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비포장도로에 좁은 길이었고, 성능이 좋기 못한 자동차였기에 사고가 많이 나기도 하였다. 특히 대구 방면에서 대가야읍 내로 진입하기 전에 넘는 고개인 금산재는 고령의 교통 소통에 있어 큰 장애물이었으며, 교통사고 또한 빈번하였다.
3. 현대
1975년 대구와 해인사, 대구와 광주 간의 국도가 확장 포장되고 나서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고, 1984년 영호남을 잇는 88올림픽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주위의 모든 도시가 하루의 생활권 내에 들게 되었다. 또한 국토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부내륙고속국도의 고령군 내 통과 노선이 2007년 완공되었다.
중부내륙고속국도가 동서 간 연결도로인 88올림픽고속국도와 함께 고령과 전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교통의 중추 기능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고령은 전국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대구와 고령읍[현 대가야읍]을 연결하는 국도 26호선 구간이 2004년 신설 개통되어 대구와 고령 간 교통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되었다.
특히 신설된 국도 26호선이 그 동안 대가야읍으로의 교통 소통에 있어 장애물로 가로 놓여 있던 금산재를 넘지 않고 그 옆을 터널로 통과하여 고령 읍내로 연결됨으로써 교통 시간이 10여분 이상 단축되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외에도 고령에는 각종 국도와 지방도 및 군도 등이 곳곳으로 놓여 있고 포장 상태도 양호하여 지역 간 및 지역 내를 연결하는 교통망 하부 구조의 여건도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령군 내로 철도가 통과하지 않아 다양한 교통수단의 이용에는 한계가 있으며, 항공 교통은 대구광역시의 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또한 고령의 모도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와는 낙동강이 가로 막고 있어, 교량 건설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배가 교통의 중심이었던 조선시대까지는 낙동강 수운이 고령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교통망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자동차 위주의 육상 교통이 중심이 되고 있는 현 시대에 와서는 낙동강이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군의 중심부 또한 낙동강이 지류인 회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주변이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지역 내 원활한 교통 소통을 차단하고 있으나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황]
2010년 현재 고령군에는 2개의 고속국도, 2개 일반국도, 1개 국가지원지방도, 3개 지방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이들 도로 위를 통과하는 교량은 모두 82개이다. 그 외 군도와 마을 진입로 등에도 많은 교량이 가설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