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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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溪里 |
영어음역 | Okgy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옥계리(玉溪里)에는 옥계·무릉동(武陵洞)·모리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옥계는 덕곡면 본리리 골짜기 가장 위쪽에 있다. 신라의 공격으로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마지막 왕인 16대 도설지(道說智)와 그의 아들 월광태자가 문수산 계곡을 따라 도망하다 이곳에서 옥대(玉帶)와 용포를 버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계곡물이 옥처럼 맑아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위끼라고도 한다. 옥계리는 옥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무릉동은 씨애·쐐·소야(蘇野)라고도 하며, 옥계에서 동쪽으로 120m 떨어져 있다. 옛날에 산천이 수려하여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모리동은 달리 모리터·모리티·모로현(毛老峴)이라고도 한다. 옛날 성주군수 정구(鄭逑)와 정승(政丞) 정인홍(鄭仁弘)은 사이가 좋았으나 노후에 사이가 나빠졌다. 하루는 정인홍이 정구를 찾았는데, 그날이 마침 국기일(國忌日)임에도 옛 정을 못 이겨 정구가 술상을 내니 정인홍은 먹지 않고 떠나 버렸다.
정구는 목이 달아날까 봐 겁이 나서 어머니에게 사연을 아뢰자 어머니는 정인홍의 어머니를 찾아가 술상을 낸 일을 이야기하고 정구가 무사하기를 부탁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정인홍의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놓고 네가 국기일에 외출한 것과 술대접을 받은 것은 잘못이 아니냐고 꾸짖었다. 이에 정인홍이 “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 이 말이 연유가 되어 모리동이 되었다고 한다.
모로현은 북두산[687.9m]과 문수봉[672m]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너무 높아 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머리털이 희게 변해야 다다른다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후 음이 변하여 모리터·모리티가 되었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성주군 인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릉동을 병합하여 옥계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하였고, 1988년 5월 1일 덕곡면 옥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가야산(伽倻山)의 한 줄기인 북두산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은 문수봉을 비롯한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북두산과 문수봉 사이에는 고령군과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을 이어 주는 고개인 모리현이 있다. 마을은 오리천 최상류에 형성된 곡저 평야를 따라 들어서 있다.
[현황]
2010년 4월 기준 면적은 7.98㎢로 농지 38만 9000㎡, 임야 7.08㎢, 기타 50만 3000㎡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68세대에 120명(남자 56명, 여자 6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오리천이 형성한 곡저 평야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산지 곡저부에 조성된 옥계저수지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봉산재, 삼우재, 옥계리 성황당 등이 있다. 북두산 남동쪽 비탈에 옥계청소년야영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