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107 |
---|---|
한자 | 大加耶邑 |
이칭/별칭 | 고령읍,읍내면(邑內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속하는 법정읍.
[명칭유래]
고령군 대가야읍의 옛 지역이 대가야국이 있던 지역이므로 새로운 대가야의 부흥을 목표로 지역 발전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대가야읍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대가야읍은 원래 옛 대가야의 중심지로서 562년 도설지왕 때 여러 가야 중 마지막으로 신라에 정복되었다. 757년(경덕왕 1)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 초 경산부에 속하였으며, 1413년(태조 13) 고령현이 되었다. 조선 말기 읍내면 지역으로 쾌빈·정동·헌문·장기·고아·연조·동부·봉두·중화·상화·지산·월기·막곡·신기의 14개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곡면의 내상(內上)·동촌(東村)·신동(新洞)·산음(山陰)·나동(羅洞)·저전(楮田)·신전(薪田), 관동면의 본관(本館)·옥산(玉山), 일양면의 내곡(內谷)·수곡(首谷)·외동(外洞)·중동(中洞)을 병합하여 고령면이라 하였다. 1979년 5월 1일에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읍(高靈邑)으로 승격하였고, 1988년 5월 1일 동을 이(里)로 바꾸었다. 2015년 4월 2일 대가야읍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자연환경]
서북쪽 가야산(伽倻山)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큰 산줄기가 읍 서쪽에서 미숭산(美崇山)[734m]을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 읍의 중심부인 지산리에서 주산(主山)[310m]을 이루며, 읍 동쪽에는 금산(錦山)[790m]이 솟아 있다. 가야산 북서쪽에서 발원한 대가천(大加川)과 동남쪽에서 발원한 소가천(小加川)이 본관리에서 합류하고, 다시 읍의 남쪽에서 안림천(安林川)과 합류하여 회천(會川)을 이루어 낙동강(洛東江)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평야가 발달하였는데, 땅이 기름지고 수리가 매우 좋아 농작물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현황]
고령군 서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구에서 서북쪽으로 32㎞ 떨어져 있다. 2010년 4월 기준 면적은 47.36㎢이며, 2016년 4월 30일 현재 총 4,890세대에 10,825명(남자 5,482명, 여자 5,3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읍 소재지인 쾌빈리를 비롯하여 고아리·내곡리·내상리·본관리·신리·연조리·외리·장기리·저전리·중화리·지산리·쾌빈리·헌문리의 13개 법정리[25개 행정리, 46개 자연마을]를 관할하고 있다.
동쪽으로 성산면(星山面)·개진면(開津面)·우곡면(牛谷面), 남쪽으로 우곡면·쌍림면(雙林面), 서쪽으로 쌍림면과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북쪽으로 덕곡면(徳谷面)·운수면(雲水面)과 이웃하고 있다. 대구·광주 간 국도와 고령·김천 간 지방도가 시가지 중심부를 통과하고, 고속국도 12호선[88올림픽고속도로] 나들목이 읍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매년 10월 초에는 대가야축제가 열린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 대학교 1개교가 있다.
대구의 근교 농촌 지역으로서 딸기·수박·참외 등의 원예 작물을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으나, 고령군의 행정 중심지인 까닭에 농업보다는 상공업과 관광업이 더욱 발달하였다.
문화 유적으로는 보물 제54호인 고령 지산동 당간지주(高靈池山洞幢竿支柱), 사적 제79호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池山洞古墳群), 사적 제61호인 고령 주산성(高靈主山城), 사적 제165호인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高靈古衙里壁画古墳), 보물 제605호인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場基里岩刻畵), 중요민속문화재 제30-5호인 고령 상무좌사 유품(高靈商務左社遺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인 반룡사 다층석탑(盤龍寺多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8호인 반룡사 동종(盤龍寺銅鍾),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9호인 고령향교(高靈鄕校), 가야공원 유물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