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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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영어의미역 | Costum Life |
이칭/별칭 | 복식문화,의복문화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개설]
복식의 풍속은 식생활, 주생활과 함께 기층문화의 알맹이일 뿐만 아니라 예의와 의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 현상이다. 다른 문화 현상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복식은 외래 복식과 고유 복식의 이중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왕실과 귀족층 일부를 포함하는 상류층에서는 외래 복식의 영향을 받은 반면, 서민층에서는 고유의 전통 복식이 끈질기게 전승되어 왔다. 특히 저고리와 바지, 치마, 두루마기로 대표되는 서민들의 기본 복식은 민족사 형성 이래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의복은 성에 따라 남성 의복과 여성 의복으로 구분되며, 옷을 입는 장소와 기능에 따라 일상복과 외출복, 의례복으로 구분되는데, 의례복은 돌이나 관례·혼례·상례·제례 등 특별한 날에 입는 의복을 말한다.
고령 지역은 옛 대가야의 도읍 터로서 상고시대에는 왕가와 귀족의 상류층 복식 문화가 발달했던 곳이다. 이런 점에서 고령 지역의 복식 문화도 이중 구조 특징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기웅이 쓴 「가야의 복식문화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와 같이,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 복식은 신라 복식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우리 복식 문화의 원류를 형성한다. 또한 가야 복식은 고구려나 백제의 것과는 이질적인 반면, 일본의 것과 유사성이 강해 고분 문화와 마찬가지로 가야의 탁월한 독자적 의복 문화가 일본 등 나라 밖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통 의복]
옛 고령 지역의 의복 차림을 보면, 남자는 겨울에는 무명옷과 명주옷을 입고, 보온을 위해 옷에 솜을 넣고 토시를 양팔에 끼었으며, 외출을 할 때는 두루마기를 걸쳤다. 여름에는 삼베옷이나 모시옷을 입으며, 머리에는 뾰족한 상투를 올려 동곳을 꽂는데, 보통 은(銀)이나 산호(珊瑚)로 만든 동곳을 사용하였다. 머리에는 망건을 두르고 탕건을 쓰고 그 위에 갓을 썼다. 수염은 깎지 않고 길게 기르며, 긴 담뱃대를 휴대하고 쌈지나 주머니를 지녔다. 비가 올 때는 갓이 젖지 않도록 갓 위에다 고깔을 쓰고, 추운 겨울에는 남바우를 썼다. 신은 짚신, 삼신[미투리], 깔집[가죽신], 나막신[비 올 때 신는 나무로 만든 신] 등을 신었으며, 개항기 이후에는 고무신을 신었다.
여자는 하의로 단속곳·풍채바지·속치마·겉치마를 입었고, 상의는 속저고리·겉저고리를 입었으며, 치마는 염색 옷을 많이 입었다. 머리치장을 할 때 처녀들은 길게 땋아서 갑사댕기를 맸다. 나이든 부녀는 다발 머리를 올렸고, 젊은 부녀는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의복 생산]
가정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여성들의 손기술에 의해 만들어졌던 전통 의복은 목화, 삼, 뽕나무, 누에 등 삶의 터전에서 생산된 재료들을 활용한 삼베, 모시, 명주 등으로 만들어졌다. ‘길쌈’은 자연으로부터 삼베, 모시, 명주 등의 천연 옷감을 제조하여 생활에 필요한 의복을 만드는 의생활 문화를 통칭한다. 길쌈은 자연 지식과 제조 기술, 노동 교환, 김쌈 노래, 전래 이야기 등을 복합적으로 포함하므로 의생활 풍속뿐만 아니라 전통 사회 여성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요소이기도 하다.
[의복의 근대화]
근대에는 섬유 기술 등의 급격한 사회 변화로 모직이나 화학 섬유 등이 대량 생산되었고, 고령 지역에서도 전통 복식을 차츰 대신해 나갔다. 의복과 신발을 비롯한 모든 의류 제품이 공장에서 생산, 보급됨으로써 과거 길쌈으로 옷을 만들어 입던 생활 풍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외출복으로 남자는 양복을 주로 입고, 여자는 양장을 입으며, 전통 의상은 명절날이나 제사 등 특별한 의례 때만 입는 옷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