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012 |
---|---|
한자 | 伽倻山女神正見母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이동월 |
[개설]
신화는 예사 사람들과 구별되는 절대적 권위와 초월적 경이를 지닌 이야기이다. 또 신화는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초월적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예사로 들어 넘길 수도, 사실 여부를 따질 수도 없다. 그러나 신화는 일상생활에서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인 경험 이전에 또는 일상적인 합리성을 넘어 존재하며, 그 진실성과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을 때 신화는 신화로서의 생명을 가진다. 그래서 신화의 전승자는 그 신화가 진실하고 신성하다고 믿고 있다.
「정견모주(正見母主) 신화」 또한 절대적이며 초월적 경이를 이야기하면서 전승하는 고령 사람들이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신화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
후기 가야의 수도인 고령 땅에는 「가야산신감생설(伽倻山神感生說)」, 일명 「정견모주설(正見母主說)」이라 불리는 신화가 전해 오고 있다. 대가야를 지켜 주는 신성한 가야산에는 산신(山神)이 있었고, 그 산신이 정견모주였다. 정견모주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9의 고령현에 인용된 최치원(崔致遠)[857~ ?] 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실려 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다른 이름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다른 이름이다[按崔致遠釋利貞傳云 伽倻山神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訶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 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則惱窒朱日爲伊珍阿豉王之別稱 靑裔爲首露王之別稱].”
가야 지역에서 가장 성산인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라는 여신과 천신(天神) 이비가(夷毘訶)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아들은 머리가 해와 같이 빛난다 하여 뇌질주일(腦窒朱日)이라 하고, 둘째 아들은 얼굴이 하늘색과 같이 푸르다 하여 뇌질청예(腦窒靑裔)라 하였다. 후에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뇌질청예는 김해로 가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
이처럼 정견모주는 가야산의 산신으로, 대가야와 금관가야 건국 왕의 어머니인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정견모주는 대가야국 왕의 어머니로, 죽어 산신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합천 가야산에 정견모주 신당 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정견모주 신화」는 가야산과 대가야국과 관련하여 고령 지방에서 전하는 대가야국의 독특한 건국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락국기」에 실려 있는 ‘가락국 고기(古記) 육란지설(六卵之說)’도 대가야 건국 신화의 하나이지만, 「정견모주 신화」는 고령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대가야 건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지방색을 근거로 한 건국 신화이다.
[설화로 재탄생한 정견모주 신화]
『옛날 옛적 고령에서』에 수록된 「정견모주 신화」는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전설이 덧붙여져 있다. 「상아덤[가마바위] 전설」과 「알터 전설」이다. 「정견모주 신화」가 전설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설화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1. 인간화된 아름다운 여신, 정견모주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와 혼인하기 위해 인간의 혼인 풍습처럼 꽃가마를 탔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아덤, 일명 가마바위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에는 가마바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마을 뒷산이 가야산 기슭이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산 속으로 200m쯤 들어서자 잣나무 두 그루가 받치고 있는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길이 15m 높이 7m의 거대한 이 바위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닿았단다. 이 마을 터줏대감 신덕수[72]씨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목욕재계하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른바 대가야의 첫 왕을 잉태한 가야산 여신을 기렸던 정견모주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시간 남짓 더 오른 가야산 중턱, 서장대 주변에는 가야산성을 쌓는데 이용됐던 수천수만 개의 돌이 허물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성벽으로 남기엔 기나긴 세월을 감당하기가 버거웠으리라. 동남쪽 능선을 100m쯤 오르자 큼지막한 돌들을 받침대로 삼은 길이 5m의 바위가 산 정상을 향해 누워 의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마바위’ 또는 ‘상아덤’으로도 불린다. 정견모주가 하늘인 ‘이비가(夷毘訶)’를 맞을 때 탔던 꽃가마였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다. 지금은 이 길목이 출입통제 지역으로 묶여 사람의 발길이 끊겨 있었다. 역사와는 상관없이 길이 통제된 것이 자못 아쉽기만 하다.”
이 글에 나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0년 전까지만 해도 정월 보름날에는 사람들이 가야산 산신 정견모주의 산신제를 지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마바위는 정견모주가 혼인하기 위해 탔던 꽃가마라고 했다. 꽃가마를 탄 수줍은 새색시 정견모주의 모습이 연상된다. 여신에게 인간의 풍습을 덧입혀 아름답게 채색한 것은 산신 정견모주를 사람들이 얼마나 가깝게 여겼는가를 말해 준다.
2. 가야연맹의 맹주로서 대가야를 부각시키는 정견모주설
경상북도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마을[구 개진면 양전리]의 지명 유래 전설도 정견모주와 연관이 있다.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에서 향토 사학가 김도윤[80]에 따르면, “가야산 산신과 하늘 신이 감응해 두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이 가야산 줄기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 내렸다. 그 중 하나는 이곳 회천에서 껍데기를 벗고 나와 대가야의 1대 이진아시왕이 됐고, 다른 하나는 회천을 지나 낙동강을 타고 경상남도 김해까지 흘러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됐다.”고 한다.
「알터 전설」을 정리하면 정견모주가 커다란 알을 두 개 낳았고, 큰 알 즉 뇌질주일이 껍질을 깨고 나온 곳을 알 터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 신화에 흔하게 나타나는 난생설(卵生說)이 정견모주설에도 덧붙여진 것이다. 정견모주설에 덧붙여진 「알터 전설」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 신화를 의식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 가운데 가장 큰 알에서 먼저 태어난 동자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5개의 알에서 태어난 동자들은 5가야국의 건국주(建國主)가 되었다는 것이 가락국 건국 신화이다. 가락국 건국 신화가 금관가야를 부각시키고 있다면, 정견모주설은 이에 대응하여 대가야를 부각시키고 있다.
[대가야와 함께 성장한 정견모주 신화]
건국 신화는 건국 초부터 형성되기 보다는 소국(小國)으로 출발해 여러 나라를 병합하면서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닦는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여러 나라를 통합하는 시기는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지배층은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정신적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었으며, 자신들의 신성함을 부각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가야의 정견모주설도 대가야 건국 초부터 이뤄진 것은 아니다. 4세기 중엽 이후 가야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서 대가야가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5세기 후반 경에는 가장 두드러진 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정견모주설도 5세기 경 고령 지방의 대가야가 가야문화권의 새로운 맹주로 등장하면서 전승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견모주설은 대가야 건국왕의 신성한 혈통과 신이한 탄생을 이야기 하여 이진아시왕이 대가야의 건국왕이 될 수밖에 없었고, 대가야가 후기 가야의 맹주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건국왕의 탄생담만 전하고 탄생 이후의 영웅적 면모가 등장하지 않아 서사적 흥밋거리가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자, 그녀가 이 땅의 주인이다]
「정견모주 신화」는 한국의 고대 건국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천부지모형(天父地母型)’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으로 단군이 태어나며,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으로 주몽이 태어난다. 한 나라의 건국 시조가 천신과 지모신의 결합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천부지모의 신성한 혈통은 천지를 아우르는 사람만이 건국 시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정견모주 신화」는 우리 고대국가 건국 신화의 전범(典範)을 따르면서 대가야의 성산 가야산 산신에게서 건국왕이 탄생한다는 독자적 지역성을 가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옛적 고령에서』에 기술된 ‘정견모주 신화의 특성’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가야산신 즉 여신을 강조했다. 정견모주설에서 천신인 이비가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야기의 초점은 산신인 정견모주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비가는 정견모주가 감응하는 객체적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석순응전(釋順應傳)」에서 대가야국 월광태자(月光太子)를 하늘 신, 혹은 남성 신인 이비가의 10세손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산신이며 여성 신인 ‘정견’의 10세손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왕실의 계보를 따질 때 정견모주를 기준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성 시조의 역할이 강조되었으며, 동시에 정착의 의미가 강한 산신의 권위가 강조된 부분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여신의 강조는 신화 제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견모주 신화」는 대가야 건국 신화로 통한다. 대가야를 건국한 사람은 이진아시왕이기 때문에 고조선 건국을 이야기한 「단군 신화」, 고구려 건국을 이야기한 「주몽 신화」처럼 「정견모주 신화」가 아닌 「이진아시왕 신화」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고령 사람들은 「정견모주 신화」로 지칭한다. 가야산신 정견모주에 대한 고령 사람들의 뿌리 깊은 숭배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가야산은 대가야에게는 국토를 지켜 주는 산신이 사는 곳이고, 그 산신 정견모주는 바로 국조를 낳은 신모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가야를 금관가야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정견모주 이야기는 대가야국의 시조 이진아시왕뿐만 아니라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한 금관국의 시조 수로왕을 함께 언급하며 그 둘이 형제라고 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이 대가야를 건국했다고 함으로써 대가야가 금관가야보다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가야연맹의 맹주국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것은 종래 금관국 중심의 6란 설화의 논리를 허물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맹주로서의 합리성과 신성성의 이념을 확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대가야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정견모주 신화」는 고령 지방 특유의 전승으로 공간적으로 협소하게 그 위상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대가야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화가 정치적 의도로 후대에 재구성되었다 할지라도 그 신화적 고유성은 별개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견모주 이야기는 수로 전승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 구조가 복잡하면서도 서사 형태는 온전하지 않다. 오로지 건국주의 탄생담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야국이 고대 국가로 체계화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특성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