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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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伽倻文化圈開發計劃-中心-高靈郡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개설]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은 고대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철의 왕국 대가야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가야 도공의 숨결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바탕이 됐다. 21세기 고령군은 이런 문화유산을 앞세워 ‘새로운 낙동강시대와 대가야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고령’으로 거듭 나는 한편, 인근 성주군 등 고대 가야문화권 지역 13개 시·군[대구광역시 달성군, 경상북도 고령군·성주군, 경상남도 거창군·산청군·의령군·창녕군·하동군·함양군·합천군,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북도 남원시·장수군]과 함께 발전협의체를 구성해 가야문화권 광역관광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낙후된 가야문화권의 발전을 선도해 오고 있다. 또한 불교문화와 유교문화에 가려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야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유적의 보존 및 개발과 함께 다양한 역사 현장 체험 학습 프로그램의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베일 벗는 대가야의 역사]
가야(伽耶)란 대략 3세기 중반 이후 경상남북도 서부 지역에 존재했던 변한 지역의 12개국 가운데 일부 국가들이 가야연맹체를 형성하면서 사용한 명칭이며 그 문화권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 지역에까지 걸쳐져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아라가야(阿羅伽耶)[함안]·고령가야(高寧伽耶)[함창]·대가야(大伽耶)[고령]·성산가야(星山伽耶)[성주]·소가야(小伽耶)[고성]·금관가야(金官伽耶)[김해]·비화가야(非火伽耶)[창녕] 등의 명칭이 나오는데 고령은 그 중 가장 강성했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대가야는 16대 520년간 지속되었으며 활발한 국제 교역과 철 생산 및 농업 등을 통하여 번성하였다. 대가야의 문화는 낙동강을 통해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후쿠이현을 비롯한 곳곳에서 다양한 관련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가야의 찬란했던 역사가 베일을 벗게 된 것은 대가야읍 지산리에 위치한 주산(主山) 능선을 따라 늘어선 200여 기(基)의 크고 작은 고분을 통해서이다. 가야 최고의 고분군으로 남은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殉葬)묘인 지산리 44호 고분이 발굴되었으며 대가야 양식의 다양한 토기와 철기, 금관들이 무덤 주인과 함께 나와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와 풍속을 우리 앞에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고령군에는 선사시대 옛 조상의 생활을 보여주는 암각화도 곳곳에 남아 있다. 대가야읍 장기리 회천변 ‘알터마을’ 입구에 있는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청동기 후기 유적으로 추정되며 보물 6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암각화에는 나지막한 바위 한쪽 면에 태양과 같은 동심원, 신의 얼굴을 본뜬 가면들이 북방을 등지고 서 있는 형태가 묘사되어 있다.
이곳에서 3㎞정도 떨어진 쌍림면 안화리에도 이와 비슷한 제의적 분위기를 뿜는 암각화가 남아 있다. 또한 쌍림면 산당리에는 하늘의 별자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의 암각화가, 운수면 월산리에는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윷판 모양의 암각화가 남아 있어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고령 땅에서 재현되는 대가야 문화]
고령군은 찬란했던 대가야의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를 준공하는 한편 매년 4월 개최되는 ‘고령대가야체험축제’를 통해 가야 문화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2005년 개관한 대가야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돌칼과 돌화살, 고인돌 등 구석기시대 원시문화의 흔적과 함께 대가야 양식의 다양한 토기, 철기, 금관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으며 대가야국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 과정, 탁월한 제철 기술로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던 당시 모습, 백제나 왜(倭)와 교섭하며 문물을 주고받던 기록 등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지산리 고분군에서 국내 최초로 발굴한 순장묘 44호 고분[직경 27m, 높이 6m]의 내부와 유물을 그대로 복원하여 왕과 함께 시종, 무사, 창고지기, 마부, 일반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함께 묻는 대가야의 순장 풍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대가야박물관 건너편에는 154,000여㎡ 부지에 206억 원을 들여 조성한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가 있다. 6세기경 철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역사·문화를 테마로 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령 모습을 한눈에 보고 체험까지 할 수 있도록 조성한 테마파크로 고대 가옥촌, 유물 체험관, 입체 영상관, 토기·철기방 등을 갖추고 대가야 문화를 재현해 내고 있다. 이중 고대 가옥촌은 고대 집 모양 토기의 확대 복원을 통해 가야인의 의식주 생활을 영상과 빛, 음향 연출로 엿볼 수 있게 해 주며 대가야유물체험관은 대가야가 우수한 철 제련술로 일본, 중국과 교류했던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대가야 고분을 형상화한 입체 영상관에서는 역사 탐방 차 고령을 방문한 한 어린이가 대가야왕릉전시관[순장묘]을 관람하다 떨어져 1500년 전의 대가야시대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난다는 내용의 ‘철의 왕국 대가야’란 4차원 영상물의 상영을 통해 대가야문화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토기·철기방은 토기와 철기 문화를 감상하고 직접 제작하는 체험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외에 숲길을 거닐며 퀴즈를 풀어보는 대가야 탐방 숲길, 대장간 화덕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마터 옹기굴 등도 대가야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들이다.
‘대가야체험축제’는 매년 4월 10일을 전후하여 3~4일 동안 대가야읍 대가야왕릉전시관 및 대가야박물관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대가야 문화 체험뿐만 아니라 암각화 체험, 무덤 체험, 전통 한식 마을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있어 관광객들이 가야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령군이 주도하는 가야문화권 광역 개발]
2005년 2월 경상북도 고령군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경상북도 성주군, 경상남도 거창군·산청군·창녕군·함양군·합천군·전라북도 남원시·장수군 등 10개 시·군 시장과 군수들이 모여 낙후된 가야문화권 발전을 위해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를 결성하여 공동보조를 취하기 시작한데 이어 2005년 6월 3일 고령군청에서는 ‘가야문화권 지역발전·혁신 광역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가야 문화의 개발을 위해 여러 개의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종합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는 ‘가야문화권 지역발전·혁신 광역협의회’는 각 시·군의 시장·군수와 민간위원 각 10명씩, 도합 10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전라남도 순천시와 경상남도 의령군·하동군을 가입시켜 현재는 13개 시·군을 회원으로 하고 있으며 결성 때부터 현재까지 고령군수가 의장직을 맡아 개발 사업의 중심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범과 더불어 광역협의회는 가야문화권 관광 지도 6만부를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또한 각 시·군에서 개최되는 모든 축제에 대규모 축하단이 서로 다른 지역을 방문하여 축제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기로 했으며 가야문화권 농·특산물 판매장을 운영하는 등 지역 공동 발전을 꾀하는데도 열정을 쏟았다. 이와 함께 가야문화권 주민들의 동질감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체육 행사를 열었으며, 가야문화권 순환 관광 도로 개설, 가야문화연구소 설립, 가야 문화 투어 개발 등의 사업을 통해 가야문화권 지역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 혁신시스템 구축에도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광역협의회는 2008년 한국토지공사 국토도시연구원에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광역개발계획 수립 연구’ 용역을 의뢰하여 「가야문화권 광역관광개발 계획안」을 보고서로 내놓았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업은 총 1조 6088억 원[국비 등 1조 2954억 원, 민자 3,134억 원]이 소요되며 지역을 3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
이중 북부 대가야권에 속한 고령군은 달성군·성주군·거창군과 함께 가야 역사·문화 유적 관광지로, 남부 대가야권인 창녕군·합천군·산청군은 문화 생태 및 가야산 관광지, 서부 대가야권인 장수군·남원시·함양군은 역사 문화 및 위락지로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업은 승마레저타운 건립 등 10개 핵심 사업과 22개 연계 사업으로 이루어지며 특정 지역 지정 후 2018년까지 10년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야문화권 특정 지역 지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복원되는 낙동강 옛 포구와 다시 열리는 뱃길]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낙동강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낙동강 총 연장의 20%에 해당하는 55㎞의 연안을 끼고 있는 고령은 예로부터 왜관과 함께 낙동강 중류의 중심 지역이었으며 대가야읍 고아리 일대의 ‘배울’ ‘뱃골’ ‘주곡(舟谷)’ 등의 지명은 이곳이 대가야 때부터 배를 건조했던 지역이었음을 알려준다. 고령군에는 잘 알려진 개경포(開經浦)와 사문진(沙門津)를 비롯하여 다산면의 논실·강정·바리미·노강진, 성산면의 무계·도진·오실, 개진면의 진두·물문·오사, 우곡면의 도진·부례·답곡·대바우·객기 등 15개의 나루가 있었다.
조선조에 이르면 개진면 개포리의 개경포는 낙동강을 대표하는 포구로 자리 잡아 소금배와 세곡선이 수없이 드나들었다. 개경포가 한창 번창할 때는 세곡선과 소금배, 잡동사니를 실은 배들이 넓은 나루에 두 겹으로 정박했고 나루 인근에는 몰려드는 물류를 저장하는 창망(倉望)이라는 큰 창고도 있었다.
남해안에서 올라온 소금과 생선은 이곳을 거쳐 합천과 거창, 성주, 김천 등지로 흩어졌고 내륙 지방에서 생산된 곡물도 마찬가지였다. 개경포가 한창 번창할 때는 하루에 소금만 1,630가마가 들어왔고 도적떼들이 최고의 도적질 장소로 지목해 노략질을 일삼자 상인들이 조를 편성해 창고 주변으로 순찰을 돌았다. 또한 개경포 주변에는 객주만도 30여 개에 달해 객주에서 나오는 장구 소리와 노래가 밤낮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다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면의 경계에 위치한 사문진은 낙동강의 모래 위를 걸어가서 배를 탄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곳에는 조선 성종 때 관청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본 상품을 보관하는 ‘왜물고(倭物庫)’라는 창고가 설치된 조선 유일의 나루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남해안을 통해 들어온 일본 상품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모두 이 왜물고에 보관됐다가 서울의 왕실이나 관아에 보내지고, 나머지는 국내 상인에게 매매되었다.
이후 사문진은 공무역 기능을 남해안의 포구 도시들에게 빼앗겼지만 대구라는 경제적 배후를 둔 덕분에 낙동강 대표 나루의 명성을 이어갔다. 1940년대 초의 기록에 의하면 사문진을 통해 대구에 집산된 물자는 쌀 20만 섬, 콩 10만 섬, 소가죽 40만근, 소금 10만 섬, 석유 35,000상자, 성냥 6,000상자, 옥양목 60,000단, 무명 10만 단에 이르렀다. 상당량의 잡곡과 약재, 잡화, 견·면직류 등도 이곳을 통해 전국 각지로 흩어져 나갔다. 그러나 1993년 사문진교가 개통되면서 낙동강 수운의 중심 나루였던 사문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며 주변의 모래사장과 나루의 흔적들도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현재 고령 지역에서는 옛 낙동강의 물길을 다시 열리려 하고 있다. 개경포에 나루터와 포구를 다시 조성하고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옛 뱃길도 재현된다. 지역을 감고 흐르는 낙동강 55㎞에 분포한 나루터와 정자, 명현들의 발자취 등을 둘러볼 수 있는 낙동강 역사·문화 탐방 코스를 만들고 낙동강 칠현 뱃놀이도 재현된다. 탐방 코스는 사문진나루터~다산관광지~노강서원~임진왜란 전적기념관~사망정[낙동강7현 충효관]~개경포~김면장군 대첩지~박석진나루터~대암진나루터를 잇게 된다.
이와 더불어 낙동강 생태로드, 고령 도예마을, 낙동강 강변 레포츠 단지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성산면 일원에는 낙동강 사료전시관을 건립하는 등 강을 따라 산재한 고대 및 근대 역사 문화 자원을 정비하고 이를 대가야 문화와 연계하는 복원 사업도 함께 추진된다.
특히 고대 한-중-일 문화 교류를 테마로 한 고령-낙동강-일본[후쿠오카]-중국[남제]에 이르는 ‘대가야 옛 뱃길 재현’, 회천면 일원에 대가야 궁성과 왕릉을 재현하려는 ‘고대촌 재현’ 등과 같은 사업의 추진은 가야문화권 개발 계획의 중심에 서 있는 고령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