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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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90세를 넘어 장수하고 있는 주민들이 많다. 김기영 씨는 올해[2009년] 96세로 그 중에서도 최고령자다. 그런데도 불편한 곳이 없을 정도로 정정하다. 장수하는 비결에 대해 묻자 별다른 말씀 없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김기영 씨의 친정은 정읍시 소성면 기린리 매꼬지마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기영 씨를 ‘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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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임 씨의 친정은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순임 씨를 ‘송산댁’이라고 부른다. 조순임 씨는 열여덟 살이었던 1940년에 이곳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 사는 스무 살의 유내옥 씨와 혼인을 했다. 혼례를 올리고 난 뒤 1년을 친정에서 묵힌 뒤[예전에는 신랑ㆍ신부가 혼례를 올리고 난 뒤 바로 시댁으로 가지 않고 신부가 친정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간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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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평리는 고려 때 갑향(甲鄕)이 있어 갑향이라 하다가 ‘가평(加平)’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평리(加平里)·백계동(白溪洞)·갈촌(葛村)·노동(蘆洞)과 이남면(二南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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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규 씨는 현재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그가 마을 이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처음 마을 일을 맡았을 때[1958년 2월]는 불과 열아홉 살의 풋내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장 직을 내놓고 지금까지 학교 일과 향교 일만 거들며 살아온 그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올해[2009년, 2008년 12월 선출] 다시 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장이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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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한가로운 3월 중순, 담쟁이넝쿨로 보아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옛 돌담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게 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어느 집 돌담 너머에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복사꽃이 함초롬히 피었고, 그 옆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시샘하듯 이른 봄 자태를 뽐낸다. 몇 발짝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당이 몹시 넓어 보이는 어느 집, 활짝 열려 있는 대문간 옆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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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은 2007년 농업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이 오래도록 간직한 전통 문화를 다시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합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전통 문화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삶에 대한 가치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새롭게 인식하면서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외부인들과 더불어서 함께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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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행하는 여러 가지 의례. 기자 의례는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이나 집안에서 이를 기원하는 습속이다. 이를 ‘기자 풍속’, ‘기자 신앙’이라고도 한다.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주체자의 행위에 따라 치성 기자(致誠祈子), 주술 기자(呪術祈子), 주물 기자(呪物祈子)로 분류할 수 있다. 아들을 갖고자 하는 개인이 행하는 의례이기 때문에 정해진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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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유독 비석이 많다. 마을 안에는 물론이고 마을 입구와 논과 논 사이에도 비석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효부비와 열녀비가 많은 것을 보면 가평마을의 역사와 풍속을 짐작하게 한다. ‘나문김효부기실비(羅門金孝婦紀實碑)’도 그 많은 비석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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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마을 주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모두가 바쁜 1년 열두 달을 보내고 있다. 물론 한겨울에는 대부분 농사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지만, 간혹 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기계의 힘을 빌려서 농사를 보다 쉽게 경작할 수 있게 되면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겨울에도 땅을 일군다. 여느 마을처럼 가평마을도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예전보다는 농사짓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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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은 지금도 매년 정월이면 당산제를 성대하게 모신다. 당산제를 모시기 위해서는 제관과 화주[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람] 선정부터 제물 장만에 이르기까지 깐깐하게 살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당산제를 모실 때 제일 까다로운 것이 바로 제물 장만이다. 제물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정성껏 대접해야 당산신이 마을을 잘 보살펴주고 해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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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의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는 인근에서도 유명한데, 그래서도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촌제를 모시고 줄다리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오늘날까지 가평마을 사람들이 촌제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것은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촌제를 모시기 때문에 마을이 사고 없이 화평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다고 믿는다.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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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하는 수많은 옛이야기 가운데 도깨비 이야기만큼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전하는 도깨비의 형체는 다양하다. 달걀도깨비, 홑이불도깨비, 등불도깨비, 멍석도깨비, 더벅머리도깨비, 강아지도깨비, 차일도깨비 등 헤아릴 수 없는 도깨비들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 형태로 전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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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최익현(崔益鉉),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도동사는 원래 고석진(高石鎭)이 후학을 가르치던 방호정사(方壺精舍)가 있던 곳인데, 1928년 6월에 후학들이 방호정사의 안쪽에 사우(祠宇)를 지어 최익현(崔益鉉)과 독립의군부 참모장을 지낸 고석진(高石鎭), 의병장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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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북서쪽에 있었다는 만정은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일대에 있는 무덤만이 옛이야기를 전하듯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만정은 고시철 선생의 호를 딴 것으로, 선생이 만년에 지어 친지 문인들과 독서하고 음풍농월했던 정자라고 한다. 지은 연대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 철종 말엽인 186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1882년 큰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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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부녀자가 중심이 되어 모시는 신앙을 가정 신앙이라 한다. 그 가운데 오늘날에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신앙은 성주와 지앙으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서는 아직도 일부 부녀자들이 성주와 지앙을 모시고 있다. 성주는 집을 지켜 주는 신으로, 옛 사람들은 집이 있으면 으레 성주가 있다고 믿었다. 가평리 가평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성주를 모신다고 하는데, 단지나 동우[동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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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34m인 방장산(方丈山)은 고창군의 진산으로 정읍 고부의 두승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전라북도의 삼신산이라고도 하며, 지리산ㆍ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고 불린다. 방장산은 고창군 신림면, 정읍시 입암면,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방향이 동쪽을 향해 있다. 방장산은 내장산의 서쪽 줄기를 따라 뻗은 능선 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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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고색창연마을체험관 안에 붙은 사진들을 보다가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한테 예전부터도 가평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했냐고 물어 봤다. 그런데 “근년에 관광객들이 마을에 오고 그러니까 시작을 했어요.” 하고 대답을 한다. 호남으로도 불리는 전라도의 전통 문화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라는 차이보다는 동부와 서부의 차이가 훨씬 두드러진다. 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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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에게 복분자에 대해 물으면, 거의 대부분 돈은 돈인데 가시 돋친 돈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분자 농사가 잘만 되면 다른 작물에 비해 높은 소득이 보장되지만, 농사짓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뜻이다. 복분자나무에는 준치 가시보다 더 빼곡하게 가시가 성하다. 그래서 수없이 가시에 찔려야만 비로소 돈이 된단다. 빗물을 머금은 돌담 때문인지 더욱 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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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버스 한 대가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정오 무렵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40여 명의 도시 사람들이 고색창연 가평마을에서 복분자도 따고 영화 촬영도 하는 독특한 체험을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여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고창군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2009년 3월에 개관한 고색창연마을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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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1년 열두 달 365일 내내 부산하다. 명절도 쇠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력 정월이 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대명절 설이 돌아온다. 이날은 제일 먼저 조상께 떡국을 쑤어 차례상을 차려 놓고 예를 갖춘 뒤,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하거나 세배를 받으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세배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께 먼저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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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를 기리는 조선시대 사당. 고흥유씨(高興柳氏)의 사우로서, 일평(一萍) 유필원(柳必源)[1625~1684],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1632~1695], 삼애(三涯) 유덕휴(柳德庥)[1667~1739], 수한(睡漢) 유세기(柳世箕)[1768~1821] 네 효자를 모시고 있다. 일평과 허제 형제는 효가 지극하고 우개가 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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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이왕 마을에 왔으면 용추폭포를 꼭 보고 가라고 권한다. 용추폭포는 구가평교를 건너 거창신씨 재실이 있는 용추동을 지나 방장산[높이 734m] 등산로로 접어들어 용추골로 내려가면 금방 나온다. 폭포의 높이는 20여 척에 달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엔 둘레가 20여 척에 달하는 맑은 못이 있다. 동그란 욕조 같은 바위 위로 폭포수가 쏟아져 마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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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은 부엌에서 모시는 신으로, 부엌의 부뚜막 위에 작은 선반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물 한 그릇을 받쳐 놓는 형태로 모신다. 지금은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하면서 싱크대 위에 물 한 그릇을 받쳐 놓은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조왕은 자식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가신(家神)으로, 집집마다 모두 모셨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조왕을 모시는 집은 따로 있다고 한다. 조왕 역시 오늘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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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고남규 씨와 함께 현재 마을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한 사람이 바로 고복상[1941년생] 씨다. 고복상 씨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이장을 맡아 마을 일을 했고, 이후에도 반장과 개발위원장과 같은 여러 직함으로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리고 2009년 그의 공식 직함은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이다[2008년 12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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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철륭제ㆍ당산제를 모신 뒤 정월 보름날 아침 마을 광장에 모여 줄다리기할 줄을 만들기 시작한다. 줄은 마을 입구에 있는 광장에서 만드는데, 그 해 상황에 따라서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이 많이 올 때면 당산할머니가 있는 당산거리에서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주로 당산할머니 근처에서 줄을 만들었으나, 올해[2010년]는 마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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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느 집을 막론하고 집 안에는 성주, 지앙, 조왕 외에 다양한 가신(家神)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칠성, 철륭, 조상, 업 등이 그것이다. 가신들에 대한 신앙은 부녀자들의 자발적인 종교적 신심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양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달라서 무질서한 듯해 보이지만, 신앙 행위에서는 그들만의 질서와 공식이 발견된다. 특히 가정 신앙은 무속적 성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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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큼지막하게 ‘가평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서 있다. 방장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갈곡천과 덕화천이 마을을 사이에 두고 흐르다 마을 앞 들판에서 몸을 섞는다. 바로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벼농사와 복분자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슬쩍 지나쳐서는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는 곳! 가평마을이 딱 그렇다. 가평마을에는 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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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풍수 사상·풍수지리·풍수설·풍수 도참설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풍수 사상은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는 태도이고, 풍수지리는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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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대표적인 유가적 윤리관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여 다양한 이야기로 전승되며 민중들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관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효에 대한 가치 추구는 특정 양반 계급이나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민족적 이념으로 승화되어 있는데, 그래서도 효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있고, 양적으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